그저 그런 여배우가 아닌, ‘의외의 발견’
  •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6 14:39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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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9년 차에 활짝 꽃핀 황우슬혜 그녀의 남다른 열정과 숨겨진 끼

그저 그런 여배우라고 생각했다. 예쁜 얼굴과 타고난 몸매 덕분에 운 좋게 연예인이 됐고, 연기력보다는 외모로 평가받다가, 일 년에 한두 편씩 작품에 출연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하는, 그런 연예인인 줄 알았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를 보기 전까지는.

 

영화 《과속스캔들》에서는 청순가련 유치원 여교사를,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에선 맘씨 고운 순진한 선생님을, 드라마 《선녀가 필요해》에서는 엉뚱한 성격의 식탐 많은 선녀를 연기했던 황우슬혜. 청순가련 스타일의 캐릭터를 줄곧 맡아왔던 그녀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혼술남녀》에서 할 말은 하고 보는 능글맞은 캐릭터 황진이를 맡았고, 《SNL 코리아》에서는 온몸에 금색 분장을 한 채 개그 본능을 발산하기도 했다. 그녀의 도전은 신선했고, 반가웠다.

 

배우 황우슬혜 © 우먼센스 제공


“‘진짜’처럼 연기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결혼 생각도 없고, 임신 생각은 더더욱 없고요. 욕을 한다거나, 욱 하는 다혈질도 아니에요. 여우 같은 스타일도 아니고요. 실제 저는 속으로 삭이는 편이고, 곰처럼 행동하죠. 그래서 황진이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너무 힘들었어요.”

구체적으로 극 중 ‘황진이’와 어떤 부분이 가장 다르냐고 물었다. 황우슬혜는 직구로 던진 기자의 질문에 변화구로 답했다. 연애 이야기였다. 

 

“황진이는 이별의 아픔을 금방 털어내는 스타일이에요. 사람들에게 ‘나 차였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캐릭터죠.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더 빨리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꽁해 있는 스타일이죠.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소극적이고 소심한 편이에요. 이별 때문에 가슴 아파도 티를 안 내죠. 헤어진 남자친구들은 제가 상처받았었는지도 모를 정도죠. 제가 상처받은 걸 굳이 헤어진 남자친구한테 알려서 뭐하겠어요. 자존심만 상하죠.”

왠지 지금 연애 중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던 황우슬혜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드라마에서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남자와 예고 없는 첫날밤을 보냈어요. 그러더니 덜컥 임신을 했죠. 오 마이 갓! 실제 저라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랑에 빠지면 그 남자만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스타일이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조금 달라요(웃음).”

드라마는 끝났다. 뜨거웠던 관심도 식을 것이다. 차분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황우슬혜. 데뷔 9년 차 황우슬혜는 오늘도 연기 연습실로 향한다. 

 

“사실 연기 외적인 부분에는 관심 없어요. 제가 ‘덕후스러운’ 기질이 있거든요. 하나를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거, 한 번 마음을 주면 그 마음이 쉽게 닫히지 않는 성격이죠.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죠. 요즘엔 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검사나 변호사 역할을 해 보고 싶은데 언젠가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악역도 해 보고 싶어서 연기 연습 중이에요. 올해 연기 연습 2만 시간을 채우는 게 목표예요.”

© 우먼센스 제공


“사람들 반응·관심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사실 배우가 연기 연습을 하는 건 특별한 건 아니다. 고3이 수능 준비를 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거다. 다만 왜 하는지를 알고 하는 것과 이유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하는 건 다르다. 

 

“연기를 할수록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심정을 알게 되니까 배려심도 느는 것 같고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좋아요. 저를 다듬어주는 게 연기예요. 연기하는 게 싫다거나 귀찮았던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이걸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은 부담감은 있었죠. ‘진짜’처럼 연기하는 게 목표거든요. 거짓말로 연기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거짓된 감정으로 연기하고 나면 시청자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해요.”

배우가 연기로 보답하는 것, 그것만큼 시청자에게 의리를 지키는 일도 없다. 황우슬혜는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잘 안 보게 돼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생각해요. ‘오늘은 뭐가 잘못됐지?’ ‘그 장면에서 이렇게 했었어야 하는데’ 이런 거요. 그동안 사랑해 주신 분들에게 연기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드라마 끝나고 예능에 출연했던 것도 좋아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연기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그동안 왜 그렇게 뜸했냐”고 물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목조목 따진다. “내가 언제 뜸했냐”면서.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단다. 그런 모습이 밉지 않다. 귀엽다. 

 

“저는 뜸한 적이 없어요. 작품 성적이 안 좋아서 그렇지 꾸준히 연기해 왔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잊힐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없어요. 인기가 거품이라는 걸 알아요. 시간이 지나면 그 거품은 사라지죠. 배우로서 저는 허무할 테고요. 그래서 무뎌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반응이나 관심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기 없으면 없는 대로 열심히 연기하고, 인기가 많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보답하려고 하고요. 사람들의 반응이나 관심이 무딘 거죠.”

의외다. 인기가 거품인 걸 안다는 그녀의 말에 괜히 숙연해졌다. 그저 그런 여배우로 치부했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관객들이 저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황우슬혜 덕분에 하루의 스트레스가 잊힌다’는 말이 가장 좋았어요. 저로 인해서, 제 연기로 인해서 잠깐이라도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엇보다 ‘진짜’처럼 연기하려고 해요. 아직도 ‘진짜’를 고민한다고 하는 전도연 선배님 말을 듣고 감명받았어요. 전도연 선배님의 경지에 오르기에는 갈 길이 멀겠죠?”

곱게 늙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황우슬혜.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이뤄질까? 분명한 건, 그녀는 지금도 내면을, 그리고 내공을 다듬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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