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뒤끝 작렬?…그는 왜 CIA를 구조조정 하려 할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06 15: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 정보기관 권한 줄이기 프로젝트 돌입해

테러 위협에 직면한 독일에서는 지금 연방이 관할하는 새로운 정보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도 안보 관련 정보 수집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까지 정보기관을 재편할 거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미국은 이런 흐름과 거꾸로 가는 중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CIA(미 중앙정보국)와 DNI(미 국가정보국)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등장한 트럼프 측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트럼프 당선인은 정보기관들이 비대하고 정치화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보기관들은 군살을 뺄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들이 정보기관들을 강하게 만드는데 트럼프는 오히려 손을 보는 쪽으로 틀었다.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도 흘러나온다. 버지니아에 있는 CIA 본부 인력은 감축하고, 거기서 발생한 잉여 인력을 전 세계 현장으로 배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왔다. 

 


“나는 CIA 안 믿는다”는 트럼프

 

트럼프는 왜 정보기관 힘 빼기에 들어갔을까. 일단 둘의 사이가 너무 나쁘다. 그리고 당선되면서 정보기관의 갑(甲)이 된 트럼프는 이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일단 정보기관은 트럼프의 당선 결과를 두고 정통성을 의심할만한 증거를 지금도 들이밀고 있다. 이미 CIA는 러시아가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돕기 위해 힐러리 캠프의 핵심 간부였던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해킹했다고 결론 내렸다. 러시아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트럼프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우스운 이야기”로 일축했다. 

 

이 사건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미 정보기관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해킹 사건을 발표한 것은 10월7일이다. DNI와 NSA(국가안보국) 수장은 공동 성명을 통해 “미국의 개인 및 기관의 이메일을 탈취해 공개한 쪽이 러시아 정부라고 정보기관들은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허가할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 최고 권력자뿐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기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 대선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었다.

 

결국 푸틴의 뜻(?)대로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도취된 트럼프 측의 정신이 번쩍 든 건 대선 이후인 12월9일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때문이었다. 이 신문은 “러시아가 트럼프의 승리를 돕기 위해 2016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고 CIA가 결론 내렸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는 “CIA뿐만 아니라 정보기관 전체가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목적’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미 정보기관들은 이런 해킹 공작을 감독한 러시아군 정보기관 참모본부 정보총국(GRU) 고위간부의 이름을 알아냈다”며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러시아의 미국대선 개입이 사실일 지도 모를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가운데, 12월16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그리고는 지난 9월 중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때 푸틴을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오바마는 푸틴에게 직접 “그만두라”고 경고했음을 공개했다. 그는 “내년 1월20일까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 결과에 따라서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결과가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이런 현직 대통령의 강한 발언에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아 했다. 트럼프 정부 인수위원회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CIA의 판단력과 신뢰도는 문제가 있으며 그런 그들이 해킹의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정보기관의 트럼프 부정 선거 결론은 계속되고 있다. 1월5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가 개최한 ‘러시아 해킹 청문회’에 미국 주요 정보기관의 수장들이 출석했다. 나란히 앉은 제임스 클래퍼 DNI 국장과 마이클 로저스 NSA 국장, 마르셀 레트라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은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대선 때 해킹으로 개입했다”고 재차 말했다. 

 

이러니 둘 사이 불신의 강은 엄청나게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해 12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CIA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가진 불신의 깊이만큼 그가 칼을 들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제기돼 왔다. CIA에 대한 복수가 시작될 거라는 얘기였다.

 

 

친(親)러시아 트럼프 vs 반(反)러시아 정보기관

 

트럼프의 정보기관 불신은 보고 절차에서도 볼 수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당선인은 정부 인수 기간 동안 매일 아침 현직 대통령과 같은 내용의 보고를 듣는다. ‘PDB(President's Daily Brief)’라고 불리는 이 브리핑은 미국 정보기관의 최신 정보를 DNI가 매일 정리해 설명하는 기밀 사항이다. 이를 위해 DNI의 분석관은 차기 대통령 당선인을 매일 방문한다. DNI는 미국 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핵심 기관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 매일 들어야 하지만 주 1회만 듣는 것으로 줄였다고 한다.

  

차기 대통령의 이런 행동에 DNI가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PDB는 케네디 정부 때 만들어졌는데 지금까지 브리핑을 듣지 않은 당선인은 없었다. 당황한 DNI와 반대로 트럼프는 여유가 넘쳤다. 그는 폭스TV와의 인터뷰에서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8년간 매일 같은 말과 같은 일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며 정보기관의 역할을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8년을 언급했으니 재선을 하더라도 듣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트럼프의 불만에 대해 DNI는 “당선인의 취향에 맞는 스타일로 변경하겠다. 같은 내용의 반복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등 전체적으로 짧게 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고의 형태와 내용이 아닌 보고의 ‘주체’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니 트럼프가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와 정보기관이 러시아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가지는 것도 힘빼기의 원인일 수 있다. 원래 CIA는 대선이 끝나고 벌어질 조직 개편을 앞두고 대(對) 러시아 정보 공작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그동안 오바마 정부는 크림반도와 시리아에서 러시아와 사사건건 충돌해 왔다. 여기에 테러 대책을 강조하다보니 러시아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이 감소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CIA 역시 그런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 모든 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상정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트럼프가 당선됐다. 게다가 트럼프는 푸틴과 외교적 밀월 관계를 강화할, 정반대의 계획을 갖고 있다. CIA의 계획은 트럼프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셈이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척을 진 정보기관이 못마땅하다보니 칼을 빼 들 수밖에 없다. 1월6일 트럼프 정부에서 정보기관을 총괄할 국가정보국장(DNI)에 댄 코츠 전 상원의원(74)이 지명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친절한 노신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맡을 임무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코프 전 상원의원이 해야 할 일로 ‘정보기관 개혁’을 꼽고 있다. 그런 그를 뒷받침하는 인물은 퇴역 장성 출신인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다. ‘트럼프의 안보 두뇌’로 불리는 그는 DNI와 CIA의 구조조정을 오래 전부터 외쳤던 인물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