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의 기소, 16년만의 판결 ‘드들강 살인사건’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1.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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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DNA 채취로 실마리 잡혀…범행 부인했지만 ‘무기징역’ 선고

2001년 전남 나주시에서 속칭 ‘드들강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30대 남성 김아무개씨(39∙당시24세)가 수차례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살인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15년간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 유족들은 원망할 대상조차 찾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지난해 김씨가 기소되면서 한을 풀 수 있었다. 검사는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 만이었다. 

 

 1월11일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강간 등 살인)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아울러 20년간 위치추적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을 수강할 것을 명령했다. 

 

사건은 2001년 2월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나주시 드들강변에서 여고생 박아무개양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박양의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고, 손에 늘 끼고 다니던 금반지도 사라졌다. 몸 여러 부위에는 성폭행의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확보된 증거는 박양의 혈흔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체액뿐이었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는 중단됐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년간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월11일 오전 피해자 유족이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40)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연합뉴스

11년이 지난 2012년이 돼서야 사건은 실마리가 잡혔다. ‘조두순 사건’이 터지며 2010년 개정된 일명 ‘DNA법(범인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으로 재소자들의 유전자를 채취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03년에 ‘광주 전당포 살인사건’을 저질러 수감 중이던 김씨의 DNA와 박양의 몸속에서 나온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광주 전당포 살인사건 역시 금품을 노리고 피해자 2명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사체의 옷을 벗겨 유기한 악질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살해당한 2명도 알몸 상태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그러나 김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박양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2014년 10월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부검의는 체액 검출 가능기간이 3~4일이라는 소견을 내놓았고, 김씨는 박양의 사망 3~4일 전에 성관계를 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주장을 깰 수 있는 증거가 없었던 검찰은 결국 김씨를 기소하지 못했다.

 

 

‘태완이법’ 시행으로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경찰은 2015년 2월 공소시효가 임박한 장기미제 강력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건의했고, 3월부터 재조사에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 김씨는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검찰은 검∙경 합동수사체제를 구축해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박양과 김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전혀 접촉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신과 부검 사진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김씨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경찰이 채취한 박양의 혈흔이 생리혈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3~4일 전 성관계를 했다면 김씨의 정액이 생리혈과 함께 배출 돼 주검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직후 살해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법의학 재감정 결과까지 나왔다. 피해자를 강간한 자가 살해까지 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김씨가 수감 중이던 교도소를 압수수색하고 동료 수감자 350명을 모두 조사했다. 이를 통해 동료 제소자로부터 “김씨가 범행을 연상케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가 범행 당일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도 발견됐다. 김씨는 사건 당일인 ‘2001.2.4’가 명기된 사진 여러 장을 소지하고 있었다. 

 

검찰은 추가조사와 검찰시민위원회의를 거쳐 2016년 8월5일 김씨를 기소했다. 김씨는 여전히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16년 만에 이루어진 판결에서 재판부는 “열일곱 살 여고생이 꿈을 펼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숨지는 등 부모의 고통을 참작했다”며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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