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도 전에 ‘탄핵’ 얘기부터 나오는 트럼프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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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예측해 유명세 탔던 앨런 릭트먼 미국 아메리칸대 교수 주장

이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또 다른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다.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1월11일 경희대 강단에 선 그는 ‘트럼프 이후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 중 ‘탄핵’이란 단어를 꺼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직 새 대통령이 취임도 하지 않은 미국 이야기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 4년 동안 혼란이 지속돼 아주 심각한 스캔들이 터지거나 탄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트럼프와 탄핵이 쌍을 지어 얘기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틀리지 않다는 뜻이다. ‘탄핵’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공교롭게도 트럼프 당선이 발표된 직후였다. 1984년부터 대선 결과를 30년간 정확히 예측한 앨런 릭트먼 미국 아메리칸대학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해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그는 독자적으로 고안한 13항목의 진위 판정에 따라 대선 결과를 정확히 맞췄다. 그런데 그의 다음 예측은 당선에 관한 게 아닌 트럼프의 탄핵이었다. 11월16일 CNN에 출연한 릭트먼 교수는 자신의 직관을 근거로 “트럼프가 탄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측 가능한 미래와 워싱턴의 정치 구조를 살펴보면 있음직한 일이라는 얘기다.

 

ⓒ Xinhua 연합

트럼프 탄핵에 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나와

 

일단 트럼프의 공약은 여러 측면에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건 그를 찍었던 사람들의 실망을 불러오게 된다. 이미 몇몇 공약은 그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민 공약은 트럼프의 딜레마가 될 수 있다. 대선기간 내세웠던 ‘멕시코 장벽 건설’이 연기될 조짐이 보이자 보수 강경파들은 트럼프의 온건함을 문제 삼으며 압박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16명의 경쟁자를 물리친 것은 무역정책과 더불어 이민공약 덕분이다”는 댄 스타인 이민개혁연맹(FAIR) 회장의 발언과 비슷한 얘기들이 트럼프 측을 밀어붙였다. 

 

한 번 살펴보자. 캠페인 기간 중 트럼프가 발표한 공약 중 일부는 정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미국 남부 국경의 거대한 장벽은 멕시코 정부가 지불을 이미 거부했다. 이 정책을 중요하게 여긴 트럼프 지지자들이 실망할 여지가 생겼다. 이 멕시코 장벽은 트럼프에게 ‘양날의 검’이다. 건설하지 않으면 지지율이 떨어져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고, 건설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부어버리면 민주주의와 미국 헌법 정신을 부정하게 된다. 이슬람교 입국 금지에 대해서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지명자가 반대 견해를 밝히면서 이 공약도 없었던 일이 되게 생겼다.

 

보호무역주의를 외쳤던 그의 경제정책도 수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은 생활 용품의 가격 상승을 가져오고, 여기에 짓눌린 미국인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결국 트럼프의 영향력은 떨어지게 된다. 국제법 위반도 생길 수 있다. 트럼프는 제네바협약을 문제 있다는 식으로 언급해 왔다. 그의 정적들이 그런 케이스를 발견하게 될 경우 트럼프를 몰아붙이는 그림도 상상 가능하다. 

 

그가 꾸린 트럼프 1기 진용을 보면 그가 지명한 사람은 그의 공약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대선 캠페인 때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를 위해 친노동정책과 재정확대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건 기본적으로 반(反)공화당·친(親)민주당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경제팀의 핵심은 대부분 월가 출신 인사들이다. 기본적으로 친시장 진용을 갖춘 셈인데 이들이 이민 정책이나 재정확대 정책을 트럼프가 말한 대로 따를 지 의문이 따른다.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이 가진 기대와 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공화당이 원하는 사람은 대통령 아닌 부통령

 

공약 변화로 생기는 위기감과 달리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워싱턴 내부에 있다. 공화당과의 관계는 트럼프가 탄핵될 수도 있는 정황적 근거다. 릭트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컨트롤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예측 불가능하다.”

 

하원의장을 맡고 있는 폴 라이언을 비롯한 공화당의 하원 의원들, 그리고 상원을 이끄는 공화당 중진들 대부분은 트럼프를 신뢰하지 않는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공화당의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트럼프는 부통령 후보로 그들이 신뢰하는 마이크 펜스 당시 인디애나 주지사를 골랐다. 2001~2013년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펜스는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을 맡기도 한 공화당 진골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나는 펜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하며 친분이 있음을 강조했다.

 

공화당은 펜스와의 조율에 고생할 일은 없다. 반면 트럼프와는 공약부터 소통 방식까지 조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의회 다수당이자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된 공화당은 이런 트럼프를 원할까.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공화당이 원하는 인물은 대통령보다는 부통령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안보에서 실수하거나 자신의 사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불법을 저지르게 되면 공화당이 취할 조치 중 하나가 탄핵이다”고 말한다.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당선인은 공화당 주류와 친밀한 인물이다. ⓒ EPA연합

취임도 하지 않은 차기 대통령에 ‘탄핵’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 그 자체가 지나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취임도 하지 않은 차기 대통령이 시작 전부터 참담한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도 미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1월20일 취임식을 앞둔 트럼프에 대한 여론조사가 1월10일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트럼프의 지지율은 39%에 불과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5%로 과반이 넘었다. 같은 날 퀴니피액대학이 발표한 조사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는 37%에 불과했다. 1월4일~8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의 지지율은 44%에 그쳤다. 

 

갤럽의 조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역사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갤럽은 새로운 대통령 취임 직전에 매번 여론 조사를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44%라는 숫자는 취임을 맞을 차기 대통령 지지율로는 매우 낮았다. 2009년 1월 취임 전 오바마의 지지율은 83%였다. 2001년 부시조차 61%였다. 1993년 클린턴의 지지율은 68%였다. 지난해 12월 갤럽 조사에서 기록한 트럼프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48%였는데 이마저도 1월 조사에서 4%가 떨어져 최저치를 깨버렸다. 갤럽 조사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성실함의 부족’이었다. 퀴니피액대학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가 “트럼프는 정직한 인물이 아니다”고 응답했고, 62%가 “트럼프는 지도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조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트럼프 문서’의 존재가 보도되기 전에 이루어졌다.

 

 

유례없는 취임 전 대통령 지지도 37%

 

이제 트럼프 문서가 공개됐으니 트럼프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문서'는 두 가지 점에서 트럼프에게 위기다. 일단 하나는 그 내용의 추잡함이다. 1월11일 CNN은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트럼프의 ‘민감한’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내용을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미 의회 브리핑에서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매체 버즈피드는 CNN의 보도에 더해 트럼프의 성관계 동영상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확보했다는 내용을 담은 미확인 정보 문건을 공개했다. 2013년 모스크바 리츠칼튼호텔에서 트럼프가 매춘부와 파티를 벌였고 러시아 정보당국이 설치한 카메라에 녹화됐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었다. 내용 자체가 하나의 위기인 셈이다.

 

또 다른 위기는 여기서 비롯된 트럼프의 대처다. CNN과 버즈피드의 보도를 시작으로 트럼프는 본격적인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첫 조치는 백악관 기자실 퇴거였다. 현재 백악관 내에 있는 기자실이 백악관 밖 ‘콘퍼런스센터’나 백악관 건너편 아이젠하워 행정동 빌딩(EEOB) 등으로 옮기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백악관 출입기자단 100여명은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고 기자실에서 기자들을 내쫓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의 이런 조치는 기존 언론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되지만 다수 언론의 ‘야당화’를 가속시키며 지지도에도 악영향을 주게 됐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면 ‘탄핵’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국도 그런 현상을 겪고 있다. 그럼 미국은 우리네 전철을 답습할까.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안젤리아 윌슨(정치학) 교수는 인디펜던트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정치 스캔들이 더욱 커질 경우 취임 12개월~18개월 내 탄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취임 전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 지적되는 이례적인 일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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