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정국 속 불매 여론에 떠는 라면업계
  • 이석∙조유빈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7.01.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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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관계로 곤욕…팔도는 5·16민족상 기부 전력 등 회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칼날이 재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출연한 자금의 ‘대가성’부터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롯데·SK·CJ·현대차·KT·포스코 등 국내 내로라할 대기업들이 대거 특검의 수사선상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삼성은 특검의 집중포격을 받았다. 2008년 특검 수사 이후 약 8년 만에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미래전략실 소속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특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16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상 처음으로 삼성의 오너 일가가 구속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법원은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과 횡령 혐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검찰 소명을 볼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되면서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올랐던 나머지 기업들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삼성 등이 최씨 모녀에게 전달한 돈의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며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특검은 기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을 다른 기업으로 돌릴 계획이었다. 특검 수사의 칼날이 SK·롯데·CJ·부영 등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 계획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 사진공동취재단·시사저널 포토


라면업계 1위 농심과 김기춘 전 실장 관계 주목

 

특검정국은 라면업계도 뒤흔들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연결돼 있는 농심이 대표적이다. 김 전 실장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의 설계자로 의심받고 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인사를 농심이 2016년 9월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영입했다. 김 전 실장과 친분이 있는 신춘호 농심 회장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농심에서 비상근 법률고문을 맡았다. 2015년 2월에 사임한 김 전 실장은 1년 7개월 만에 다시 농심의 비상임 법률고문에 이름을 올린 터여서 의구심이 더했다. 

 

농심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농심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의 역할은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법률적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며 “매달 200~300만원 미만의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품업계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청와대 실세로 불렸던 김 전 실장이 특정 기업의 고문 자리를 맡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 전 실장은 농심 법률고문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에서 신춘호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회사 경영에만 전념할 뿐 외부 행사에 일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왔기 때문에 농심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왕뚜껑’과 ‘비빔면’ 등으로 유명한 팔도도 최근 특검 정국이 시작되면서 몸을 바짝 낮췄다. 이 회사는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력 회사인 한국야쿠르트의 지분 40.83%를 보유한 지주회사다. 

 

팔도 계열 한국야쿠르트는 2013년 5∙16군사정변 미화 단체인 ‘재단법인 5∙16민족상’에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열일곱 차례에 걸쳐 7억6500만원의 거액을 기부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한국야쿠르트와 팔도 등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5∙16민족상은 1966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대 총재를 맡아 재단법인을 구성하면서 만들어진 상이다. ‘5∙16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고, 민족의 왕성한 의욕과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이 5∙16민족상 제정의 취지였다. 1990년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1990년 5월16일 열린 5.16민족상 시상식에서 김기춘 당시 검찰총장이 상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쿠르트, 대통령 표창 받고도 침묵한 이유는? 

 

한국야쿠르트가 최근 대통령 표창을 받고도 ‘침묵’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야쿠르트는 2016년 12월3일 열린 제21회 ‘소비자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기업이 수상을 했을 경우 보도 자료를 내고 그 사실을 홍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날 대통령 표창을 받은 동아제약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수상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한국야쿠르트는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관례였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전에 국무총리상을 받았을 때도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며 “관례에 따른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야쿠르트 사옥.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가 팔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시각도 나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는 상황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야쿠르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언론사 주최 소비자 대상 소식까지 나와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구설수에 시달린 한국야쿠르트가 또 다시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결고리를 없애려 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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