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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재벌家 후계자들도 ‘청문회’ 수준의 검증 해야

[재벌家 후계자들 - 프롤로그] 본격적으로 막 오른 ‘재벌 3세’ 경영시대, ‘후계구도 및 자질’ 집중 분석

감명국·송창섭·송응철·박준용 기자 ㅣ kham@sisapress.com | 승인 2017.01.28(Sat) 15:24:23 | 1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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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 벽두부터 재벌 대기업에 경영권 승계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경영권을 자식에게 어떻게 넘겨주느냐 하는 것은 재벌의 오랜 고민거리다. 사회 통념상 ‘부자지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은 이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갖은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피의자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으로부터 강도 높게 조사받은 것도 결국은 경영권 승계 문제였다.

 

시사저널은 2015년 ‘신(新)한국의 가벌(家閥)’을 1년 가까이 연재하며 재벌가의 혼맥 가계도를 총정리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년 만에 다시 시사저널은 재벌 대기업의 후계구도를 검증·분석하는 새 연재기획 ‘재벌가 후계자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재벌 2세에 이어 3세들이 경제권력을 서서히 장악해 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에 따른 자질 및 능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대선후보와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격한 검증과정과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대기업 경영승계자들에 대해서는 마치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안일함을 보여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의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재벌(財閥)’은 대한민국의 문화다. 영어로 마땅히 끼워 맞출 단어가 없어 영어사전에서는 아예 ‘chaebol’로 표기한다. 영어사전 중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에서는 그 사전적 설명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in South Korea) a large family-owned business conglomerate.’((남한에서) 가족이 소유한 대규모 기업집단.)

 

2017년 1월, 이 땅에 다시 재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재벌 개혁’을 외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재벌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재벌기업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삼성그룹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 수감의 기로에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걸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재벌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회장으로 대표되는 ‘재벌 3세’다. 흔히 재계 속설로 “창업주가 피땀 흘려 일으킨 기업을 2세가 조금 까먹고, 3세가 다 말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서울신문 산업부장 출신의 홍성추씨는 지난해 펴낸 《재벌 3세》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재벌이 2세에서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2세는 창업주가 그룹을 일구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눈으로 익히고 몸으로 뛴 경우가 많았지만, 3세는 다르다. 2세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도련님’ ‘아가씨’ 소릴 듣고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기만 했다. 또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둔 채 유학 등의 시간을 보내며 한국의 사회·경제 전반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월17일 한 연설에서 재벌 3세의 경영세습을 대한민국 경제 최고의 리스크로 꼽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 개혁을 하려면 재벌 세습부터 중단시켜야 한다. 웬만한 재벌 대기업들의 제1의 경영목표는 3대 세습이다. 최우선 과제를 세습으로 하고 있다. 재벌 2세까지는 그래도 창업자 멘털이 좀 있었다. 그런데 3세들은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세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가 “자녀라는 이유로 무조건 경영권 넘겨받나?”

 

ⓒ 시사저널 미술팀

실제, 새해 들어 재벌 대기업들은 저마다 경영권 승계를 속속 준비하거나 내놓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평균 나이가 70대를 넘어서면서 경영권 승계는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들 앞에 놓인 사회적 환경은 녹록지 않다. 현재 상당수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2세에서 3세로 넘기는 과정에 있는데, 지금의 환경은 과거 창업주가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기던 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피를 나눈 혈연지간이 경영권 승계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3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영권을 자녀에게 승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부정적 의견’(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바람직하지 않다)이 절반을 넘어선 56%를 기록했다. 이들은 자녀의 경영권 승계가 갖는 문제점으로 ‘경영능력 미검증’(36.7%), ‘불법·편법적인 부의 상속’(30.8%)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이 연구소가 같은 해 11월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국민의 54.8%가 ‘재벌 2·3세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역행’(39.6%), ‘경영권 승계 과정이 불공정’(25.2%), ‘독단·특권의식 등 기본 자질 부족’(19.2%) 등을 그 주된 이유로 꼽았다.

 

특히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라는 공적자금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도구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상당하다. 박영수 특검팀이 고심 끝에 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이러한 사회 정서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 수사는 경영권을 후대로 넘겨야 하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학계에서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것이 지분승계비율이라는 개념이다. 현재 시점에서 전체 주식자산 가치 중 자녀들(그 배우자 포함)의 자산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바로 자산승계비율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업 성과 등을 조사하는 CEO스코어의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해 10월 자료에 따르면, 오너가 있는 상위 50대 그룹 대주주 일가의 계열사 보유주식 승계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32.7%로, 2011년 초(28.7%)에 비해 4.1%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승계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개별기업으로 보면 삼성·현대차·롯데·한화·두산 등 상위권 그룹은 승계율이 대부분 40%를 넘겼다. 하지만 교보생명·이랜드·현대산업개발 등 7개 그룹은 자산승계율이 ‘제로’였고 SK·아모레퍼시픽·한라·메리츠금융 등도 5% 미만으로 경영권 승계가 미미했다. 반면, 한국투자금융과 태영그룹은 자산승계율이 90%를 넘어 세대교체가 사실상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편법을 동원한 경영권 승계 논란을 부추겼다면, 최근 잇달아 벌어진 한화·동국제강 3세들의 폭행 사건은 총수 일가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돈 앞에 사회 정의란 없다’는 식의 막가파적 행동은 대중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재벌가 2·3세들의 일반인을 뛰어넘는 고속승진도 논란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인(그룹 총수 및 대주주)이 입사 후 회사 등기임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57년이었으며 사장은 14.78년, 그룹 회장은 26.48년이었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속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전무는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재입사한 뒤 2년 만인 2015년 11월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2010년 입사 후 5년 만에 전무로 올라간 케이스다. 여성 중에서는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사장이 눈에 띈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96년 24세의 나이로 조선호텔 상무보로 입사한 정 사장은 2003년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 2009년 신세계 부사장 등을 거쳐 2015년 말 백화점부문 사장에 올랐다.

사회적 반감을 의식해서인지 재계에는 최근 경영권 승계 속도를 늦추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70대를 넘어선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총수들의 건강 탓도 있지만, 증여세 부담이 큰 데다 관련 세제가 갈수록 보완되면서 승계가 더더욱 어려워진 것이 큰 이유로 풀이된다. 다만 지난 몇 년간 롯데·금호그룹 등 일부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갈등을 빚는 것을 보면서 일부 기업들은 오히려 승계 속도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올해 초 국내 최고령 CEO(최고경영자)를 기록했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그 뒤를 강정석 사장이 이은 것이나, 1월16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후임으로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회장에 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차남인 강문석씨와 4남인 강정석 회장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바 있다. 효성그룹도 장남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효성중공업 부사장 간 심한 갈등을 보여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을 1월10일 제7대 대한항공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조 사장의 여자 형제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와의 경영권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부터) © 뉴스뱅크이미지·연합뉴스·뉴스1


획일적인 오너 중심 경영, 한계에 직면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재벌가(家) 중심 체제의 기업 경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도약기에는 강력한 오너 중심의 경영이 필요하겠지만,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우려면 획일적인 오너 중심 경영은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웃 일본에서도 창업가문과 전문경영인 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냐를 놓고 논의가 활발하다. 

일본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창업가문이 보유한 주식은 2%에 불과하지만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2009년 6월에 취임한 아키오 회장도 도요다 가문의 3세다. 적층 세라믹 콘덴서를 만들어 세계 시장점유율 50%, 영업이익률은 25%에 달하는 대표 강소기업 무라타제작소의 현 사장 무라타 쓰네오는 무라타 아키라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다. 하지만 무라타제작소에서 창업주 가족이 보유한 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와 정반대로 창업주 가문이 소유하지 않고 경영 전면에 나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이 기업가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과거 1970~80년대에나 통하던 말이다. 

 

※시사저널의 새 연재기획 ‘재벌家 후계자들’은 다음 호에 그 첫 번째 순서로 ‘효성그룹 후계구도’를 검증·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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