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가정폭력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6 17:25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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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집안일’로 치부…도움 요청 전체 1.3%에 불과

가정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가 신고해도 가정 내 폭력을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해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이나 동반 자살로 이어지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더 이상 가정폭력을 ‘집안일’로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인 1월30일 저녁. 서울 중랑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27살 엄마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곁에 있던 100일 된 아들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목숨을 잃었다. 아기 엄마는 최근까지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부터 3차례 남편의 폭력 피해 사실을 경찰에 알렸고, 숨지기 6일 전에도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조사를 받았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이 여성은 아이와 함께 집 근처 친정집에서 지내왔고, 결국 목을 매 숨졌다. 부검 결과 여성의 몸 곳곳에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들은 목 부위 손 눌림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유서도 발견됐다. 가정폭력이 극단적인 선택을 부른 것이다.

 

지난해 7월에도 가정폭력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상습 가정폭력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송아무개씨(62)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자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의 아내는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송씨가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영장이 기각됐으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가정폭력 끝에 아이와 아내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한 남편이 도주 중 자살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대물림되는 가정폭력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8400여 건이던 것이 2년 뒤인 2015년에는 2만5653건으로 급증했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부부폭력 발생률은 2007년 40.3%에서 2010년 53.8%로 증가했다가 2013년에는 45.5%로 다소 낮아졌다. 하지만 전체 가정폭력 건수로 보면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현행법상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에 해당한다. 피해 대상은 주로 여성·아동·노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가정폭력은 신체적인 폭력만 있는 게 아니다. 배우자에 대한 비하, 모욕적인 말로 고통을 주는 언어폭력, 부부 사이지만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강제 성관계나 성적인 학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정폭력은 한 가족의 붕괴를 초래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폭력의 가해자이고 또 다른 한 명이 피해자가 된다면 그 가정은 온전하게 지탱하기 힘들다. 이로 인해 부부의 이혼, 자녀에 대한 폭력의 세습, 자녀의 가출과 비행, 학교폭력 등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가정폭력은 상습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거나 멈추지 않고 정도가 더 심해지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또 대물림된다. 여성가족부의 조사 결과,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성인이 돼서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이 남성은 53%, 여성은 64.4%였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한 셈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핵 이빨 복서’로 악명을 떨친 미국의 마이크 타이슨이다. 1980년대 약관의 나이에 세계 헤비급을 석권했던 타이슨은 가정폭력과 성폭행 등으로 한순간에 명성을 잃고 범죄자 신세가 됐다. 그는 한창 전성기에 18세 흑인 여성을 강간해 징역 6년과 보호관찰 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3년간 복역했다. 가정폭력 ‘대물림 현상’으로 악순환을 거듭했던 것이다.

 

배우 김정민도 얼마 전 자신의 가정폭력 경험을 고백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월 한 케이블TV에 출연한 김정민은 “친아버지의 지속적인 가정폭력 때문에 어머니가 가출하고 동생을 돌보기 위해 14살 나이에 가출해 미용기술을 배웠다”며 “밤이 되면 일찍 조용히 자는 집, 부모님이 안 싸우고 엄마가 안 우는 집이 부러웠다”고 과거사를 털어놨다.

 

ⓒ 시사저널 미술팀

가정폭력이 부모 살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2000년 5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과천 부부 토막살해 사건’은 부모한테 학대받던 아들이 범인이었다. 명문대를 나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부모는 막내아들이 서울대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사립 명문대에 진학하자 냉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학대로 이어졌고, 결국 참다못한 아들은 흉기로 부모를 살해하고 토막 낸 후 쓰레기봉투에 담아 유기했다. 아들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부모의 학대가 정상 참작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학대당하며 자란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FBI(연방수사국) 범죄 통계에 따르면 1977년부터 1986년 사이 10년간 총 300명의 부모가 자녀에게 피살당했다. 부모를 살해한 청소년 중 상당수는 아동학대 피해 경험이 있었다. 한 언론사가 국내 사형수들을 분석한 것을 보면 성장기에 가정환경이 불우한 사형수들이 많았고,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낮은 신고율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율은 여전히 낮다. ‘본인 집’이나 ‘이웃집’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실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수는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족이므로’(57.4%)와 ‘남의 일이므로’(55.8%)가 가장 높게 나왔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주위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실정이다. 이것은 가부장적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순종 문화’에서 비롯된다. 가장인 남편에게 가족 구성원들은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또 폭력은 순종과 복종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폭력의 경우 대부분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은폐되기도 쉽다. 보복 폭행, 가정파탄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신고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정의 치부가 드러날까봐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온라인 상담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한 주부는 “남편이 주사(酒邪)가 좀 심한 편인데 술 먹고 들어온 날이면 가정폭력을 행사한다. 처음에는 심하지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대응을 안 해서 그런 건지 요즘은 점점 그 수위가 세져서 얼마 전에는 팔꿈치가 찢어져 응급실에 가서 8바늘을 꿰매고 왔다”며 “친정에서는 가정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 괜히 이야기해서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고 이혼만은 하기 싫은데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고 이혼만을 원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상담한 한 여성은 “아빠가 술 마시고 들어오면 엄마나 언니나 나에게 꼬투리 잡거나 화났던 일을 얘기하면서 욕을 한다. 예를 들면 ‘죽여버리겠다’ ‘대가리를 깨버린다’ 등등. 심지어 의자나 선풍기를 던진 적도 있다. 언니는 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폭력을 당했다. 언니는 아빠한테 맨손으로 맞기도 하고 등산용 스틱으로 맞기도 했다”며 “신고하고 싶어도 막상 신고를 못하겠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피해자가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가정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가정폭력은 방치하면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은 엄연한 범죄이고 결코 방관해서도 안 된다.

 

2016년 11월23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여성가족부 ‘2016 성폭력·가정폭력 추방주간’ 기념행사가 열렸다. © 뉴시스

신고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신고를 통해 경찰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여성단체 등 가정폭력 상담기관을 통해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가정폭력을 차단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는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 기혼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했을 경우 병원 진단서나 상처의 사진, 주변 지인들의 증언 등이 있으면 이혼이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을 당했거나 이웃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난 경우에는 망설이지 말고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8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한국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이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가정폭력 피해자 및 자녀가 가해자로부터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자립 지원을 확대하는 등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 긴급전화 ‘1366’ 누르세요!

 

가정폭력을 당했을 경우 피해 여성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경찰은 ‘여성 긴급전화 1366’을 운영하고 있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으로 보호나 상담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해 365일 24시간 운영한다. 상담자 또한 여성이다.

 

‘1366’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해 놓고 있다. 상담 지원뿐만 아니라 의료비 지원, 무료 법률 지원도 가능하다. 피해 여성이 가해자와 분리된 생활을 원하는 경우에는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만약 피해자와 자녀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거주를 원할 경우 입주 심사를 거쳐 주거 지원도 가능하다. 이주 여성을 위한 상담전화 ‘1577-1366’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도 자국어로 상담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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