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스마트폰은 잠시 놓아두고, 연필을 쥐어보자
  • 신수경 북 칼럼니스트(서울문화사 출판팀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7 19:04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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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힘》, 그냥 연필일 뿐인데, 놀라운 연필 한 자루의 힘!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요즘의 시대. 진지하게 연필을 들고 종이 한 페이지를 어떻게 채워볼까, 하고 진득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연필의 힘》은 연필이라는 다소 아날로그적인 도구의 장점과 특징을 통해서 스마트폰이나 SNS에 빠져 획일화된 사고와 행동방식을 가진 많은 현대인들에게 다시 연필을 쥐어볼 것을 권유하는 책이다. 연필의 탄생과 역사, 스케치와 낙서, 드로잉 등 연필의 기초적인 활용법부터, 연필로 시작해 세상을 움직이고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그동안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던 연필의 독창적 가치와 실용적 활용법을 모두 담았다.

 

 

인류와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한 벗, 연필

 

대개 초등학교 졸업 이후 연필을 쓸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필은 연필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역사 속의 위대한 예술가들, 그리고 현재도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창조성은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끄적이면서 그 고민의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은데, 이렇듯 연필은 인간의 창조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데도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이다. 연필은 지금의 문화와 예술이 만들어지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고, 지금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곁에서 언제나 함께 있어 왔다.

 

연필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하고 있다. 연필의 발명은 진화의 역사에서 바퀴와 불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혁신이다. 이 간단한 도구의 발견이 엄청난 문명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가이 필드 글·그림 홍주연 옮김·더숲 펴냄 128쪽 1만4000원


연필의 주원료인 흑연은 15세기 초, 유럽의 바이에른 지방에서 처음 발견됐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수백 년 전 아즈텍인들이 뭔가를 ‘표시’하는 용도로 이미 흑연을 사용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연필은 1795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에서 복무 중이던 프랑스의 과학자 니콜라 자크 콩테가 발명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HB 연필에 들어 있는 흑연으로 약 56km의 선을 끊김 없이 그을 수 있고, 약 4만5000자의 글자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누구도 직접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연필은 매년 전 세계에서 150억 개 이상 생산되는데, 이것을 차례로 이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7배 정도이고, 6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중 연필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는 지구를 40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다. 연필은 여전히 전 세계인들이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 도구임이 분명하다.

 

화가 반 고흐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깊은 절망 속에서 던져두었던 연필을 다시 쥐고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림작가 조안 스파르는 “나는 의지할 뭔가가 간절히 필요했고, 그래서 연필에 의지했다”고 했다. 저술가 마이어 역시 “2호 연필과 꿈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가에게 연필은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의지할 뭔가가 필요할 때도 사용되었다. 이들은 무기력과 슬럼프에서 헤어나기 위한 다짐을 ‘연필을 다시 쥐는 것’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연필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예술가들은 연필의 끝이 곧 창조의 시작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가이 필드는 런던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의 모든 창조의 시작점은 연필임을 강조하면서 연필은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로의 첫걸음이 되어 줄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창의성은 연필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다빈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연필로 스케치했다. 그가 남긴 회화는 10여 점밖에 되지 않지만, 그가 끄적였던 메모와 스케치, 그림의 양이 무려 1만3000쪽이 넘는다고 하니 그에게 연필이 얼마나 유용한 도구였는지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다빈치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추상적인 생각을 수많은 낙서·드로잉을 통해 더 발전시키고 구체화했던 것이다.

 

 

필요한 건 오로지 연필과 종이뿐, 거기에 상상력만 더하면

 

또한 연필은 레터링이나 타이포그래피를 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만화 속 영웅들도 연필의 끝에서 탄생했다. 슈퍼맨과 배트맨부터 마블 코믹스의 아이언맨·엑스맨·스파이더맨 등도 연필의 끄적거림 속에서 탄생했다니 정말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렇듯 다빈치가 명작을, 잭 커비가 만화 속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연필과 종이뿐이었다니 연필이 가진 힘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연필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들도 소개하는데,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무료한 삶을 더 재미나게 만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연필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재밋거리를 소개한다. 자 없이 선긋기, 레터링, 드로잉, 만화 그리기, 글자 꾸미기, 재미있게 낙서하는 법 등을 알려주고 연필로 하는 다양한 게임들을 소개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필은 그저 뭔가를 끄적거리고 그리는 것만으로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게 하며, 내재되어 있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도록 도울 것이다. 이처럼 연필과 종이로도 얼마든지 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조앤 롤링과 피카소처럼 세상에 이름을 떨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작 연필 한 자루로. 지금 당장 스마트폰은 잠시 놓아두고 연필을 들고 무엇이든 적어보거나 그려보면서 연필의 힘을 한번 믿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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