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권의 안종범 수첩이 이재용 운명 갈랐다
  • 송응철·조해수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7.02.18 13:07
  • 호수 14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카드는 ‘경영권 승계 프레임 확장’과 ‘삼성SDI 처분 주식 축소 특혜’

‘벼랑 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지난 1월19일, 당시 박영수 특검팀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그동안 특검팀은 삼성에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대가성을 입증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삼성 게이트’로 변질됐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랬던 만큼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고심을 거듭하던 특검팀은 2월14일 결단을 내렸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로 한 것이다. 특검팀은 사활을 걸었다. 이번에도 구속영장이 불발에 그칠 경우, 수사가 동력을 잃고 표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월16일 영장실질심사에 나온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특검팀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를 알 수 있다. 양재식 특검보를 필두로 윤석열 수사팀장과 한동훈 부장검사 등이 총출동했다. 한 부장검사는 이 부회장 수사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 1차 영장실질심사 당시 동석한 박주성·김영철 검사도 함께했다. 특검팀의 ‘총력전’에 맞서 삼성도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방어에 나섰다. 대표주자는 판사 출신이자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송우철·문강배 변호사다. 여기에 검찰 고위직 출신의 이정호·조근호 변호사는 물론,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성열우 팀장(사장)을 필두로 한 미래전략실 법무팀도 ‘지원사격’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고성준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도 추가

 

당초 검찰과 법원 주변에서는 영장 재청구 승인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뇌물죄와 강요죄를 놓고 법리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증뢰죄(贈賂罪)의 경우 수뢰죄와 달리 대부분 불구속 수사가 이뤄진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특검팀이 이전에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의 혐의에 더해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추가했지만, 회의적인 시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 달리 특검팀의 창은 결국 삼성의 방패를 꿰뚫었다. 2월17일 영장심사를 맡은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 인해 삼성은 설립 이래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속영장 청구가 승인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 판사가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특검팀 내부 사정에 밝은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영장심사에서 특검팀은 경영권 승계에 대한 프레임을 확장했다. 1차 영장청구 당시 특검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슈에만 집중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의결에 청와대의 외압이 가해졌고, 이후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삼성에 반격의 여지를 내줬다. 합병이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 독대 이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을 합병 찬성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차 영장청구에는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을 대가 범위 안에 포함시켰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후계승계 문제가 삼성의 현안으로 대두된 이후, 2014년 9월과 2015년 7월, 2016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과 독대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 특검팀의 판단이다. 이런 내용은 특검팀이 추가로 확보한 39권의 ‘안종범 수첩’에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시사저널 미술팀
여기에 ‘안종범 수첩’을 바탕으로 삼성물산-제일기획 합병 건 외에 또 다른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삼성SDI의 삼성물산 처분 주식수를 줄여줬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인 2015년 10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1000만 주를 처분하라는 잠정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실제 공정위는 그해 12월 처분 주식수를 500만 주로 밝혔다. 특검팀은 최상목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에게 삼성의 처분 주식 축소를 지시했으며, 그 배경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특검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특혜 상장 의혹도 범죄 사실에 추가했다. 이 회사는 3년간 적자 기업이어서 상장이 불가능했다. 코스피 상장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거래소가 2015년 11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요건을 완화함에 따라 1년 뒤 상장에 성공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바이오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환경규제 완화 등을 요청한 것은 물론,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세 차례 이상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도와주라고 언급한 정황도 확보했다.

 

 

“사법개혁 불똥, 법원으로 튈 수 있단 우려도”

 

법원이 여론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선비’ 기질이 있는 판사들은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제시된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라며 “그러나 앞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뒤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기각을 비판하는 시위가 전개되는 등 여론이 들끓는 모습을 보고 법원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어서 이런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개혁의 초점은 검찰에 맞춰져 있지만 법원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를 다시 한 번 기각하게 되면 정권교체 후 사법개혁의 불똥이 법원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