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삼으려다 호랑이 키워 우환 만들었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7 14:40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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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사망’으로 삐걱대는 北·中 관계

2월21일 중국 베이징의 외교부 청사.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는 관련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2월17일 브리핑에서 겅 대변인은 “진전된 상황을 알고 있으며 계속 주시하겠다”며 남의 일인 듯 말한 바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의 시신 인계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중국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김정남을 보호해 온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현재 김정남의 본처 신정희와 아들은 베이징에, 후처 이혜경과 1남1녀는 마카오에 살고 있다. 셋째 부인인 서영라도 마카오에 거주하는데, 모두 중국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중국에는 김정남 일가 외에도 적지 않은 고위급 관료와 가족이 체류 중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친중파(親中派)’인 그들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해 관리해 왔다. 향후 북한에서 정변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 AP 연합·Reuters


김정남, ‘개혁·개방’ 외치다 권력서열 밀려

 

이번에 암살당한 김정남과 2013년 12월 숙청당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 내 대표적인 친중파였다. 2월21일 발행된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김정남이 후계경쟁에서 탈락한 원인을 지나친 ‘친중’ 성향에서 찾았다. 아주주간에 따르면,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정남은 전국을 시찰하고 북한 경제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이에 김정일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자고 간언했다. 1996년 8월 한 집회에서는 중국식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까지 했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북한 체제의 뿌리가 흔들릴 것을 염려해 김정남을 경계했다. 같은 해 이모인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김정남은 권력 중심에서 더욱 멀어졌다. 이로 인해 김정남은 매우 실망해 의기소침했고 해외로 나가 떠돌기 시작했다. 아주주간은 “김정은이 집권한 뒤 친중 세력이 김정남을 중심으로 군사정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김정남을 두 차례나 암살하려고 했다”면서 “그때마다 중국 당국의 방어로 목숨을 부지했었다”고 보도했다.

 

실제 김정남과 장성택을 추종하는 인사들은 북한 귀국을 거부하고 중국에 머물렀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탈북자로 규정해 중국 정부에 체포해서 인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가 북한 체제와 권력층의 고급 정보를 가져서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경호원을 붙여 밀착마크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외부인 접근이 어려운 정보기관이나 공안국과 가까운 빌라를 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김정남 암살에 대한 입장 표명을 극도로 아끼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다르다. 2월15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는 ‘김정남 살해’라는 속보방이 개설됐다. 2월22일 오후 3시 현재 무려 2억30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댓글은 7만2000개가 달려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팔로워도 2만5000명을 넘어섰다. 댓글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제후들의 역사를 담은 세가(世家)편을 패러디한 ‘사기 김정남 세가’다.

 

‘김정남 세가’는 고문체(古文體)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남은 어려서 유럽을 돌며 유학한 뒤 부민강국(富民强國)의 뜻을 세웠다. 태종 13년에 귀국해 인민군 대장군에 봉해졌다. 장대한 뜻을 품었으나 중년에 뜻을 잃고 46세의 나이로 영웅적 죽음을 맞이했다. 늙어서는 강호에 묻혀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누가 김정은을 막나’라는 댓글도 인기다. ‘먼저 재수 없었던 이는 고모부로, 죽여서 입을 막아 분규를 없앴다. 다시 고모를 시골로 내쫓아, 조정 안팎의 권력을 혼자 틀어쥐었다. 이제는 형까지 모살했으니, 천하의 패륜아 김정은을 누가 막을 것인가?’

 

 

“중국 정부의 오판이 화 불렀다”

 

중국인들이 가지는 북한 정권과 김정은에 대한 반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김정남 암살 장면은 중국인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이런 북한 정권의 잔악상에 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특정인 피살 사건이 사회 분야 이슈 1위에 오르며 관심을 받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한 네티즌은 북한 정권을 후원해 왔던 중국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병풍으로 삼으려다가 호랑이를 키워 우환을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중국 정부도 대내외에서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2월18일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상무부는 “유엔 2321호 결의와 중국 대외무역법을 근거로 2월19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으로, 대(對)중국 수출 금액의 4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은 2016년 말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산 석탄 수출량에 상한을 두고 이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행을 차일피일 미뤘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친중파’ 김정남 암살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북한의 외화 획득과 통치자금 마련에 일정한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중국이 대북 제재를 지속할 가능성은 작다. 북한이 중국과 전쟁을 함께 치렀던 유일한 ‘혈맹’인 데다, 최고지도부가 양국을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필자에게 “중국 입장에서 김정남은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버린 카드였다”며 “김정남 암살이 북·중 관계에 큰 영향을 주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도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군사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향후 북·중 관계의 바로미터는 추가적인 대북 제재조치 여부다. 만약 중국이 석유 공급이나 국경 밀무역마저 중단한다면, 대북 정책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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