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민들이 20세기 후진 정치 밀어냈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3.1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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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이끈 시민들,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선고하자 헌재 담장 밖에선 시민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헌재 인근을 지키던 일부 의경들조차 탄핵 인용 소식을 듣고 손뼉을 쳤다.

 

마침내 ‘촛불혁명’이 성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시민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촛불 하나 만으로 ‘탄핵’을 외치던 무혈혁명이 이뤄진 셈이다. 겨울 내내 두툼한 외투를 입고 광장을 지켰던 수백만 명의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마침내 승리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촛불시민은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지난해 10월 2만명 규모로 시작된 촛불은 순식간에 광장을 뒤덮었다. 여야 정당이 유불리를 따지며 ‘질서 있는 퇴진’이나 ‘개헌 논의’ 등 우회하려 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박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내용 없는 사과로 국면 돌파를 시도하자 촛불은 더욱 거세졌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직후에도 100만명 안팎의 시민들이 매주 주말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질 것’이라는 한 친박계 의원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100만명 안팎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꾸준히 탄핵을 외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반드시 ‘적폐’와 결별해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숙이 자리 잡은 부패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고도 성장기를 지난 한국 사회의 불안과 불평등의 폐단을 ‘반드시 바꾸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촛불시민과 국민에 의한 탄핵”이라며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걸 용인할 수 있다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촛불혁명은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10항쟁 등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철옹성 같은 정치권력을 무너뜨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촛불 시민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다양한 구호를 외쳤다”며 “21세기 시민들이 20세기 후진 정치를 밀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민국은 다시 완전한 민주공화국을 향한 긴 여정에 올랐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분노와 대통령을 탄핵시켰다는 자신감이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바꿀 원동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어떤 정치인에 대해서도 권력을 전횡하게끔 놔두지 않겠다는 인식이 고양됐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은 한국 정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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