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보까지 삼성 입김 작용했나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3.14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기사 게재했다가 삭제 논란… 대학들이 ‘백지신문’ 내놓으며 거세게 저항한 배경은

65년 역사를 가진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이 13일 1면을 백지로 발행해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1면에는 기사 대신 큰 공백 위에 “서울대 공식 언론인 ‘대학신문’은 전 주간 교수와 학교 당국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라는 내용이 게재돼 있었다. 백지 발행의 이유는 학생기자단 기사에 대한 학교 측의 편집권 침해다. 그 배경에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 ‘반올림’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기자단은 “지난해 1월 기사 소재로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선정하고 취재 후 기사 작성까지 완료했지만 주간은 기사가 노동자 입장에서만 작성됐다며 게재를 불허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학생들의 ‘본부점거’ 이슈도 1면을 백지로 발행한 배경 중 하나였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해 8월 국제캠퍼스를 조성하기로 학교 측과 시흥시가 업무협약을 체결하자 10월10일부터 본관을 점거했다. 서울대 학보사 기자단은 “주간이 ‘학생총회, 본부점거’ 이슈를 축소하고 ‘개교 70주년 기념’ 이슈의 비중을 늘릴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교수들로 구성된 대학신문사 자문위원단은 기자단의 편집권 보장을 위한 학보사칙 개정 요구에 대해 “편집권은 누구에게도 귀속돼 있지 않으며 이를 알면서도 학생기자단이 편집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의결서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단은 주간교수와 대학본부가 편집권을 침해했다며 3월13일자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 연합뉴스


자문위원단 “편집권 침해 주장은 명예훼손” 주장

 

대학 학보사가 ‘백지신문’ 발행이나 발행 연기 등을 통해 학교 정책에 항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5월 서울여대 학보사가 백지신문을 발행했다. 그 배경에는 ‘청소노동자 현수막 철거 갈등’이 있었다. 서울여대와 노조는 청소노동자 임금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축제 ‘서랑제’를 개최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이 내건 현수막을 ‘축제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다음 날 서울여대 졸업생 143명이 성명을 내고 “더 나은 축제 환경을 조성한다며 청소노동자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철거한 총학생회의 처사를 비판한다”고 밝혔고, 총학생회의 행동을 문제 삼은 성명서를 학보사에 전했다. 학보사는 이 성명서를 1면에 게재하려 했다. 그러나 학보사 편집인 겸 주간 교수가 성명서 게재를 가로막았다. 학보사 기자들은 “주간 교수가 성명서를 실으면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주장했다. 기자단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1면이 백지인 학보를 발행했다. 서울여대가 백지신문을 발간한 것은 51년 만에 처음이었다. 

 

지난해 5월에는 상지대 학보인 상지대신문의 1면 백지 발행 배경은 ‘학내 분규’였다. 상지대신문 측에 따르면 총학 출범식, 세월호 추모 행사, 교수 18명의 부당징계 취소 요구, 특별 장학금 지급 과정 논란, 학생식당 메뉴 및 가격조정에 대한 학우들의 불만 등을 보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간 교수는 기사 삭제를 지시했고, 기사를 빼지 않으면 발행 결재를 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상지대신문 기자단은 호외를 통해 “‘개성공단 폐쇄에 비판하는 교수 칼럼, 교직원의 전 총학생회장 폭행사건 등 많은 기사가 빠졌다”며 “정부에 잘못 보일세라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 또한 보도하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여대 학보사가 1면 백지 발행에 대해 내놓은 입장문(서울여대 학보사 페이스북)


학교 정책 항의 차원서 백지신문 발행 사례 잇달아 

 

학교와 관련된 민감한 기사를 학교 측에서 막아 1면 일부가 공백으로 나간 사례도 있었다. 한성대신문은 2014년 9월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주간 교수로부터 기사 수정과 삭제를 요구받아 1면 일부를 백지로 발행했다. 당시 삭제된 기사 제목은 '본교 정원 감축으로 재정 지원 제한 대학 지정 유예돼'였다.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는 창간 78년째인 2013년 학교 예산 정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1면을 백지 발행했다. 연세대가 그동안 등록금에 포함시켜 일괄 징수하던 ‘연세춘추비’를 선택납부로 바꾸면서 연세춘추비 평균 납부율이 18%까지 떨어졌고, 예산총액이 전년 대비 3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연세춘추는 페이스북에 “1면이 하얗게 비어버린 춘추. 무슨 일인지 궁금하시다면, 한 부를 들고 읽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백지로 발행된 학보 사진을 게재했다. 또 ‘정론직필 기치 꺾는 연세대에 고함’이라는 성명을 통해 “연세춘추와 그 자매지인 ‘The Yonsei Annals’가 고사위기에 놓였다. 경영난에 부딪혀서다”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