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아직 공개 못한 김기춘 블랙리스트 문건 더 있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3.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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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블랙리스트 시집《검은 시의 목록》 출간한 도종환․김성규…부모에게도 연좌제 적용

1월9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7차 청문회.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입에서 마침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답이 나왔다. 조 전 장관은 국조특위 위원들의 계속된 질의에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답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결국 조 전 장관을 포함해 지난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구속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하루 앞둔 3월9일, 시사저널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두 명의 시인을 만났다. 시인으로서 국회에 입성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성규 시인. 모두 지난 정권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블랙리스트 시인’들이다. 또한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시를 모아 만든 시집 《검은 시의 목록》에 시 한 편씩을 올린 이들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윤선 전 장관의 입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도종환 의원은 2015년 이후 줄곧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 제기를 해왔는데, 처음 블랙리스트를 인지한 건 언제였나.

 

도종환(도)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서 주는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심사의원들의 제보로 시작됐다. 당시 심사과정에서 문예위 직원들이 찾아와 특정인 명단을 들이밀며 “선정 대상에 배제해달라”고 하더라는 거였다. “안 빼주면 이 사업 제대로 진행이 안 될 것이다”는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이 제안을 끝내 거절하자, 문예위가 임의로 최종심사에 오른 사람 중 30명을 빼버렸다. 


김성규(김) 이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심사위원들이 녹음파일을 폭로해버렸다. 2015년 8월의 일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인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목됐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도) 우리가 확보한 증거자료 가운데 문체부에서 작성한 대외비 보고용 공문이 있다.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 관련 현안’이란 제목의 이 공문엔 블랙리스트 명단 속 인물을 지원사업에서 배제해야하는 목적과 주요 조치 실적, 문제점과 향후 대응방안까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란 게 단순히 ‘명단’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특정 인물에 대해 명백한 차별과 지원배제를 가한 구체적 정황까지 있다. 

 

특정인 혹은 단체에 재정 지원을 얼마나 해줬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 여부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재정적 배제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배제 등 사회적 배제 여부도 남아 있다. 해당 공문엔 처리과정에서 진행 여부를 승인 혹은 불승인하는 몇몇 주체들의 의견이 이니셜과 함께 표기돼있다. ‘K(국정원)’‘B(청와대)’‘1차장’ 등이 특정인에 대한 지원에 대해 ‘배제’ 혹은 ‘양해’해줬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대외비 공문서 얘기를 좀 더 해달라.

 

(도) 문서의 일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례로 2015년 5월21일에 작성된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 관련 현안’ 자료에는 ‘주요 조치 실적’으로 ‘공로사업 중 329건 배제 조치’란 항목이 있다. 2014년6월부터 2015년5월 현재까지 문체부가 주도해 지원을 배제한 사업이 분야별로 보고돼 있다. 이 중 문예위 사업의 경우 총 3360건 신청된 사업에 대해 133건을 배제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예술인복지분야, 공연예술분야, 미술분야 등등 누수한 영역에 걸쳐 이 같은 배제가 이뤄졌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이 구속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개입을 명백히 보여주는 이런 물증 때문이었다.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고 검찰 측의 비공개 협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자식이 블랙리스트 예술가면 부모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인터뷰 당시는 대통령 파면 전이었다)가 들어선 지난 4년은 한국 문화사에 있어 ‘암흑기’로 기록될 것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안 오르고 여부를 결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도) 김기춘 전 실장이라는 한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었다. 극우에 선 이념 가치에 바탕을 둔 판단이었다. 

 

특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2014년 4~5월 사이 국민소통·행정자치·사회안전·경제금융·교육·문화체육·보건복지·고용노동 등 비서관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해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도록 했다. 야당 후보자 지지선언을 하거나 정권 반대운동에 참여하거나 주관적으로 좌파성향으로 선별한 개인과 단체가 그 대상이었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 작성 초기엔 모두 3000여개의 ‘문제단체(좌파성향으로 구분된 단체)’와 8000여명의 ‘좌편향 인사’를 솎아냈다. 


(김) 김 전 실장이 사회 전영역에 걸쳐 ‘좌편향 인사 및 단체’를 전수조사하고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문에 블랙리스트는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지금까지 문화예술계만 드러난 것이다.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세력과 야당 지지자들까지 모두 블랙리스트로 규정했다면, 블랙리스트는 이념적인 것은 물론이요, 지극히 정파적인 것이 아닌가.

 

(도)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2013년 8월21일부터 시작됐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게 같은 해 8월8일이다. 당시 그는 “지금의 형국은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김기춘의 이념은 극단적으로 편향돼있었다. 그는 문화예술계의 90%이상이 좌편향돼 있다고 봤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검찰에서도 “나는 이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김 전 실장의 모습에서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의 모습을 봤다. 아이히만은 나치 정권 몰락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서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지시를 이행하는데 충실했을 뿐이며,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면 양심에 괴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이런 그를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표현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나는 지난 국조특위 청문회에 나온 김기춘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아무 책임과 잘못이 없는, 그저 맡은 바 소임을 다한 ‘늙은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포장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그의 무능함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능.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다.

 

 

박 전 대통령(인터뷰 당시만 해도 파면 전이었다)의 승인 없이 일련의 일들이 진행될 수 있었을까.

 

(도) 김기춘의 시작은 대통령의 ‘말’이었다. 검찰의 공소장엔 대통령이 CJ에서 만드는 영화와 방송이 편향돼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2012년 대선 당시 CJ E&M에서 운영하는 채널 중 하나인 tvN의 한 프로그랜에서 <여의도 텔레토비> 등 풍자 코너가 많았다. 거기에 근거해 김기춘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시작한 것이다. ‘불온한 예술가’들을 걸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는 원래 불온하다” 의원님께서 한 인터뷰에서 하신 말이다. 

 

(김) 시집 《검은 시의 목록》을 읽어보라. 그 속에 담긴 시들이 불온한가. 그저 일상의 한 단면을 담고, 슬픔에 공감하고 아픔에 달래주는 그런 평범한 시들이다.


(도) 그런데 또, 예술가가 불온하면 어떤가? 시인은 불온하다. 연극하는 사람은 삐딱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예술가인가? 전제주의 국가의 월급 받는 시인이 아니라면 현실에 대해 마냥 찬양하는 글만 쓸 수 있을까. 창조란 비판과 저항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시집 《검은 시의 목록》에 수록된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 중에서

나희덕 시인의 시 ‘파일명, <서정시>’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데크나메 리릭(Deckname Lyrik)이라는,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체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에 대한 시다. 당시 구동독 정보국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도 불온하다 보고 사찰을 한 것이다.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라고, 시인은 질문을 한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시인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독재자다. 


검은 시의 목록 책표지


그렇다면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이들, 궁극적으로 최종 책임자였던 대통령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해야 하나?

 

(도) 어떤 국민이든 헌법에 의해 감시받지 않을, 검열받지 않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또한 표현․창작․출판의 자유가 있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에 따른 지원배제는 헌법 위반이자 형사상 위법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당시 ‘문화융성’을 국정 지표로 내걸었다. 또 문화가 국력인 나라를 만들겠다 공언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만든 나라는 문화가 국력인 나라가 아니라 문화가 폭력인 나라였다. 또 문화의 가치가 곳곳에 스며드는 문화사회가 아니라 공안의 가치가 곳곳에 스며든 야만의 사회였다. 결코 용납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사법처리 해야 한다. 관련된 기관이나 산하 단체까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은 시의 목록》은 저항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블랙리스트 시인들의 작품으로만 만들어진 시집.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김) 지난해 말 친한 시인들끼리 모였을 때 이런 책 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후 어떻게 책의 방향을 잡을까 고민했다. 저항 시만 묶기보단 시시인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자고 합의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 명단 가운데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한 시인을 주로 담았다. 원로 신경림, 강은교 시인부터 박준, 박소란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섞어 99명 시인의 시를 한데 모았다. 그러니까 모두 99편의 시가 담긴 셈이다. 

 

이 책을 펴낸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일이지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99편의 시를 읽다 보면, 하나의 검은색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는 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탄핵 이후 한국은 어떻게 돼야 하나(이 질문은 대통령 탄핵 이후 전화로 물었다).

 

(도) 구치소 청문회 당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제가 직접 물었다. “장․차관 인사자료 같은 것도 최순실에게 갖다줬냐. 대통령의 지시였느냐”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포괄적 지시가 있었다”고 답했다. 대체 최순실이란 개인이 누구길래 국정원 기조실장, 1․2차관 임명 후보자를 그에게 보고하고 승인받는가. 분명히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직분과 권한에 벗어나는 행동이다. 대통령 탄핵은 마땅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국가 운영을 맡길 수 있겠는가. 

 

대통령 파면이란 초유의 사건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상식적인 사회'에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 그 간단하면서도, 지난 정부에선 끝내 보지 못한 사회를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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