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피용’ 뜨는 ‘마크롱’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 15:25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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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정치자금 스캔들로 몰락하는 피용 프랑스 대선후보

‘Imperdable(패할 수 없는).’ 2017년 프랑스 대선에 대한 우파의 전망이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라고 봤던 이유는 상대 진영인 좌파 사회당 출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고작 5%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파의 입장에선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는 선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뒤집혔다. 대선을 50여 일 앞둔 현재, 우파로선 ‘이길 수 없는’ 선거가 돼 가고 있다.

 

3월7일 BFM의 보도에 따르면, 우파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19%의 지지율을 기록해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위는 26%를 차지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후보인 마린 르펜이며, 2위는 올랑드 현 프랑스 대통령 내각에서 뛰쳐나온 신예 기수 에마뉘엘 마크롱 전 재경부 장관으로 25.5%를 얻었다. 지금의 판세로는 마크롱 진영의 확실한 패착이 없는 한 전세를 뒤집을 만한 뚜렷한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가족 세비 횡령에 이어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휩싸인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공화당 대선후보 © EPA 연합

피용, 연이은 스캔들에도 대선 완주 의지

 

2016년 11월 우파 공화당은 전직 총리인 프랑수아 피용을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65%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당시 피용은 확실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유세 일정도 국내가 아닌 해외 순방이 눈에 띄게 늘어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다. 1월25일 피용 후보의 배우자인 페넬로페 피용의 위장취업과 세비(歲費) 횡령 의혹이 불거져 기소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페넬로페 게이트’라고 명명된 이번 파문에 대한 그의 대응은 미숙했다. 피용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차례 “기소되는 상황이 오면 후보직에서 사퇴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제 그의 강수는 부메랑이 돼 자신의 목을 겨눈 셈이 되고 말았다. 자연히 그를 향한 여론도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첫 보도 일주일 뒤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65%의 프랑스 국민이 피용의 대선 출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파 공화당 전체엔 초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후보 교체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위기에 빠진 피용은 3월1일, 예정돼 있던 농업박람회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랑스의 모든 보도채널은 그의 대선 불출마 발표를 예상하며 기자회견 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그러나 정작 회견장에 피용이 들고나온 말은 “나는 멈추지도 항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무소속 대선후보가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AP 연합

단호한 피용과 달리 캠프 인사들은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다. 부인에 대한 의혹이 터졌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피용을 옹호했던 티에리 솔레르 캠프 대변인이 가장 먼저 퇴진을 발표했으며, 오랜 세월 피용의 측근이었던 캠프 선거본부장 파트리크 스테파니니는 “피용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이 남아 있지 않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우파 진영에서도 피용에게 더 이상 희망을 두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발레리 드보르 공화당 대변인은 “이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라고 토로했다. 당장 피용은 남은 선거기간 동안 ‘검찰수사 진행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 정책과 공약을 설명해야 하는 유세 자리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고해(告解) 시간’이 돼버리고 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알랭 오페르 공화당 의원은 “대선 한복판에서 후보가 조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이라며 “검찰수사는 우리 쪽 유권자들을 잠식해 나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감추지 않았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선후보가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AP 연합

“피용의 태도는 정치적 자살 행위”

 

한편 피용의 대응 실패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그가 검찰과 사법부를 향해 끊임없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공화당 내에서까지 “사법체계를 깎아내리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 한 시사주간지는 이러한 피용의 태도에 대해 ‘정치적 자살’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피용이 끝까지 공화당 후보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3월7일 공화당 지도부는 피용의 거취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피용에 대한 지지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이들은 이대로 가다간 대선 패배가 자명하니 피용을 대체할 후보를 물색하려 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대체 후보였던 알랭 쥐페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뜻을 분명하게 밝히자,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쥐페는 “내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에는 너무 늦었다”면서 현재 우파 상황을 ‘난장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만장일치 지지 결정이 난 이튿날 피용은 또다시 새로운 정치자금 횡령 의혹에 휩싸였다. 이번엔 기업인 친구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검찰 조사에 이어 자택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연이어 터진 스캔들로 피용이 고전하는 사이 중도층을 끌어안은 무소속 마크롱 후보가 지지율 급상승을 보이며 대선 판세를 흔들고 있다. 심지어 국민전선 르펜 후보까지 이기고 거뜬하게 집권에 성공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때 대세론을 구가하던 피용은 이제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혹 피용이 지금의 위기를 모두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구겨질 대로 구겨진 체면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프랑스 정치 전문지 ‘프로크루아’ 카롤린 포레스트 편집장은 “피용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도덕성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만큼 프랑스에 불행이 닥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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