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무모함이 네덜란드 극우 집권 막아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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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장관 입국 거부 사건이 네덜란드 총선 영향 미쳐

3월15일에 실시된 네덜란드 하원 선거. 150개의 자리를 두고 28개 정당이 다퉜다. 오후 9시, 투표가 모두 마감됐다. 네덜란드 국민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투표율은 82%를 기록했다. 직전 선거의 경우 65%였으니 국민들이 투표소로 엄청나게 몰려갔다. 다음 날인 16일 오후까지 계속된 개표. 여당인 자유민주당(VVD)은 33석을 획득해 제 1당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윗자리를 줄곧 차지했던 극우 자유당(PVV)은 개표 결과 20석을 획득했다.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당(CDA)과 민주66당(D66)이 19석으로 뒤따랐다.

 

천신만고 끝에 제1당 자리를 지킨 자유민주당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국민은 잘못된 포퓰리즘에 대해 명확하게 ‘안된다’고 말했다“고 강조하며 승리를 선언했다. 2017년 유럽의 첫 선거를 지켜보던 EU와 주변 유럽 국가에서도 뤼터 총리의 승리를 축하했다. 만약 자유당이 네덜란드에서 집권했다면 앞으로 있을 유럽 전역의 선거에서 극우 세력은 기세등등했을 뻔 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 상승하던 자유당의 추세가 꺾였다. 여론 조사에서 지난해부터 줄곧 지지율 선두를 질주해 온 자유당이었다. 올해 1월 조사에서는 35석을 얻어 제 1당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으니 불과 2개월 만에 상황이 급변한 셈이었다.

 

총선 결과에 따른 연립정부 구성 방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마르크 뤼터 총리(오른쪽)와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 © Dpa연합

터키 외무장관이 바꾼 선거판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출구조사를 본 뒤 “의석이 늘었으니 우리에게는 승리다”고 트위터에 짧게 언급했다. 지난 선거 때 얻은 15석보다 4석을 더 얻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장및빛 예상에 비하면 부진한 결과였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왜 자유당은 선거 동력을 잃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극우 정당에 정권을 맡길 수 있을지 유권자가 의심했다” “뤼터 총리의 경제 정책에 긍정적인 평가가 반영됐다” 등 다양한 분석이 현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장면을 꼽자면 아마도 터키와의 사건 때문일 거다.

 

3월11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네덜란드로 향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정부 당국과의 만남 때문이 아니라 국내 문제를 위해서였다. 최근 터키의 화두는 ‘개헌’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중임제에 묶여 2019년 대선에서 승리해도 2024년에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돼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또 다시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럴 경우 2029년까지 임기를 연장하는 게 가능하다.

 

유럽 각지에는 터키인 노동자들이 흩어져 산다. 이들을 중심으로 터키 정부는 개헌 지지 집회를 장려하고 있다. 오는 4월 국민투표가 예정돼 있는데 터키 내 개헌 찬반 여론은 50대50으로 팽팽하다. 결국 캐스팅보트는 재외국민의 표가 쥐고 있고 이들의 투표가 개헌안의 운명을 가를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날은 네덜란드에서 개헌 지지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차우쇼을루 외무장관은 이 집회에 참석하고 참가자들에게 개헌을 호소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물이 생겼다. 네덜란드 정부가 그의 입국을 불허했다. 결국 터키 장관이 탄 비행기는 네덜란드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다가 방향을 돌려야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치안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불허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반(反)민주적인 터키의 개헌을 지지하는 집회를 용인하지 않는 게 유럽 각국의 보편적인 정서이며 여기에 네덜란드도 따른 셈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네덜란드를 “파시스트 국가”라고 쏘아붙였다.

 

총선 직전 벌어진 양국의 충돌은 현재 진행형이고 외교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원래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정치전문가들은 이민자를 반대하는 자유당에 호재라고 내다봤다. 이민자들의 모국 문제로 네덜란드가 시끄러워졌으니 당연한 예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뤼터 총리의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왜냐면 네덜란드 국민의 다수가 뤼터 총리의 입국 불허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뤼터 총리가 보여준 강력한 대응과 리더십이 부각되면서 총선 득표로 연결됐다.

 

터키 외무장관의 입국이 불허되자 터키 이스탄불 이스티크랄 거리에 모인 개헌 지지자들이 네덜란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AP연합

3월11일 입국 금지가 벌어지고 이틀 뒤인 13일에는 각 정당의 대표들이 선거 토론회에 등장했다. 뤼터 총리는 11일의 사건을 토론회장에서 십분 활용했다. “주 네덜란드 터키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과격한 비판이 등장하는 가운데 뤼터 총리는 실행력을 강조했다. “소파에 앉아서 트윗을 날리는 것과 실제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고 말하며 트위터 정치를 즐겨하는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를 겨냥했다. 그렇게 토론회는 한 쪽으로 분위기가 쏠린 채 끝났다. 토론회 직후 13일 밤에 실시된 투표 전 마지막 여론조사.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급등했고 예상 획득 의석은 27석으로 점쳐졌다. 선거 전 최고치였다.

 

일각에서는 극우정당인 자유당이 패배했다고 평가내리는 건 지나치다고 말한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국민의 이런 감정을 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빌더르스 대표의 말처럼 극우 지지세는 늘었고 지난 선거보다 의석을 늘리는데도 성공했다. 반이민, 반이슬람을 주장하는 자유당의 주장에 동참하는 흐름이 확대됐다는 거고 이것만 봐도 실패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유민주당과 연정의 파트너로 참가할 순 없겠지만, 대신 ‘가장 영향력이 큰 야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네덜란드를 유심히 바라본 프랑스의 극우

 

유럽의 주요 국가가 아닌, 네덜란드 총선에 세계의 시선이 모인 이유는 이곳이 극우 발호의 1차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네덜란드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할 경우 당장 4~5월의 프랑스 대선과 9월 독일 총선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극우의 힘이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에 도미노처럼 퍼질 것을 유럽은 염려했다. 가뜩이나 브렉시트로 영국이 탈퇴한 EU는 극우 정권이 등장할 경우 그 원심력으로 해체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번 네덜란드 총선 결과에 모두 안심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프랑스의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1~2위를 오가며 결선 투표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르펜 대표는 네덜란드의 빌더르스 대표와도 친분이 두텁고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전해진다. 그 과정과 결과를 분석해 자신의 선거 활동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일단 극우 정당의 집권을 터키 덕에 막아낸 네덜란드의 선거는 끝났다. 다음은 1개월 뒤, 프랑스로 관심이 옮겨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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