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개헌 연대’ 대선판 흔드나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 16:37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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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연대=非文 연대’…개헌안 국회 통과 힘들 듯

 

5월 ‘장미 대선’을 앞두고 개헌을 고리로 한 ‘비(非)문재인 연대’가 시동을 걸고 대선판 흔들기에 나섰다. 대선판을 ‘개헌 대 호헌’ 구도로 재편해 대선 정국의 변수로 만들겠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3월15일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교섭단체 3당은 5월9일 대통령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기로 합의했다. 3당은 늦어도 3월말까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2·3·4당이 ‘개헌 연합군’을 결성해 불리한 대선판 뒤집기에 나선 모양새다. 대선과 개헌 투표 동시 실시를 반대하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고립시키는 ‘비문 연대’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일부 민주당 개헌파들도 개헌안 발의에 동참할 것으로 전해졌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3당 개헌특위 간사들이 모여 작업을 해 왔고 최근 들어 민주당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단일안을 만들었다”며 “민주당이 지도부까지 나서 당내 개헌 찬성 의원들의 내부 단속에 나서니 탈당까지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민주당 개헌파가 합류하면 개헌선(국회의원 200명)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오른쪽), 바른정당 주호영,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왼쪽)가 3월1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개헌안 관련 논의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개헌 연대, 3당의 정치 위기 탈피 구상

 

이번 개헌 합의의 배경엔 정치적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3당 각각의 정략적 구상이 작용한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존립 위기에 직면한 한국당은 세력 보존을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개헌을 선택했다. 창당 이후 한국당에 밀려 보수진영의 소수파로 전락한 바른정당은 정치적 재기를 위해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당 내 중진그룹은 제3지대 세력화를 위해 개헌을 활용하고 있고, 민주당 개헌파들은 ‘비문 연대’ 확산을 위해 개헌에 동참하고 있다.

 

3당은 개헌안을 발의한 것만으로도 대선 국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 대선에서 ‘개헌 대 호헌’이란 대립 구도를 부각시켜 중도·보수 진영의 대선후보 단일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 야권 대선 주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 실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개헌안 발의란 첫째 관문은 넘을 수 있지만 본회의 의결이란 둘째 관문은 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본회의 의결정족수를 못 채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라며 “원내 1당을 빼고 자기들끼리 모이면 개헌이 되느냐”고 말했다. 원내 121석인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하면 국민투표에 앞서 국회 문턱도 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개헌은 빨리 이뤄질수록 좋지만, 문 전 대표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정당들만으로) 개헌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원내지도부 간 합의와 선을 그었다.

 

야권 대선 주자들은 ‘선(先) 국민적 합의’를 들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 전 대표는 “정치권 일각의 개헌 논의는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무슨 권한으로 개헌을 추진하나”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3월1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영입 인사를 발표하며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뉴시스

개헌 고리로 ‘비문 연대’ 언제든 부상 가능

 

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옳지 않다. 개헌은 우리 모두가 합의해서 해야 한다. 특별한 정당 연합으로 표 대결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개헌이 아니다”며 “개헌이 대선을 앞둔 정략이 돼선 안 된다. 대선을 앞둔 개헌 논의는 졸속이고 정략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도 “개헌은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내년 지방선거 때”라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3당이 의기투합해 개헌안을 마련해도 이 같은 반대 때문에 국회 통과가 무산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을 제외한 교섭단체 3당 의석수는 165석으로 개헌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200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민주당 내 이탈 표도 기대하긴 어렵다. 민주당 개헌파 36명 중 29명이 대선과 개헌 투표 동시 실시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민주당의 대표적 개헌파인 이종걸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월 대선에 맞춰 단일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것도 국회와 국민 동의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선과 개헌 투표 동시 실시가 불발되더라도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 연대는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정치권의 찬성 여론이 높은 데다 집권 가능성이 작은 3당이 본선 국면에서 문 전 대표의 개헌 의지를 물고 늘어지며 상황 반전을 노릴 게 뻔하다.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가 후보로 결정될 경우 낙선한 후보 진영이 비문 연대에 합류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민주당을 탈당해 독자세력 구축에 나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의 ‘제3지대’도 탄력을 받게 된다. 김 전 대표의 반(反)패권 청산과 3당의 개헌 명분이 일치하는 만큼,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제3지대 빅텐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3지대가 구축되면 대선 본선은 1대1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된다. 문 전 대표와 3지대 단일 후보의 ‘51대49’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3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정권을 흔들 수 있는 대응책 마련도 검토하고 있다. 대선 때 국민투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대선 1년 안에 개헌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부칙을 개헌안에 넣겠다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문 전 대표의 입장을 고려한 맞춤전략이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의 개헌 로드맵을 반영한 개헌안에도 반대할 경우 개헌 의지가 없는 호헌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대립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3당이 연대해 새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들 경우 정부에서 국정과제와 관련한 법을 발의해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정책을 현실화하기 어려워져 국정이 불안해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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