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맹활약하는 한국낭자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3 14:31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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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전미정 통산 25승 상금 100억원 돌파…‘슈퍼스타’ 이보미 상금왕 3연패 도전

리우올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29·KB금융그룹)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복귀한 뒤 2개 대회 만에 우승했을 때, 같은 날 일본에서는 안선주(30)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개막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안선주의 우승은 박인비로 인해 조용히 묻혔다. 언론의 주목도 별로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의 활약상이 일본을 냉큼 삼킨 셈이다.

 

시장 규모나 인기 면에서 LPGA가 JLPGA를 월등히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을 발판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초창기 여자프로골퍼들을 감안한다면 일본 무대는 국내 여자프로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은 국내 골프팬들에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골프시장은 미국으로 바로 건너가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약속의 그린’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안선주의 개막전 우승에 이은 전미정(35·진로재팬)의 우승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골퍼 전미정


안선주는 3월5일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류큐 골프클럽(파72·6617야드)에서 열린 JLPGA투어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총상금 1억2000만 엔) 최종일 경기에서 1타를 잃고도 합계 6언더파 282타로 가와기시 후미카(일본)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역전승을 거뒀다. 투어 통산 23승째다. 안선주는 전미정이 보유한 JLPGA투어 한국선수 최다 우승 기록 24승에 1승차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자 전미정은 바로 다음 대회에서 우승하며 그 간격을 2승차로 벌렸다. 전미정은 3월12일 일본 고치(高知)현 도사컨트리클럽(파72·6228야드)에서 열린 JLPGA투어 요코하마 타이어 골프토너먼트 PRGR 레이디스컵(총상금 8000만 엔) 최종일 경기에서 4타를 줄여 합계 7언더파 209타로 후지사키 리호(일본)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에서 이겼다.

 

한국 여자골프선수 중에서 JLPGA투어 최다승을 기록 중인 전미정은 이날 우승상금 1440만 엔을 보태 통산 상금 10억 엔(약 100억원)을 돌파했다. 전미정이 앞으로 5승만 추가하면 JLPGA투어 영구 시드권을 받는다.

 

JLPGA투어에서도 한국은 LPGA투어에서처럼 ‘막강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이보미(29·혼마)가 상금왕에 오른 데 이어 신지애(29·스리본드)가 랭킹 2위에 올랐다. 여기에 ‘미녀골퍼’ 김하늘(29·하이트진로)을 비롯해 강수연(41), 이지희(29·진로재팬), 김나리(32), 이나리(29)가 맹활약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섹시미녀’ 안신애(27·문영건설)와 윤채영(30·한화)이 가세했다.

 

 

일본에서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성공

 

한국은 지난주까지 통산 189승을 올렸다. 전미정이 25승으로 가장 많고, 고(故) 구옥희(1956~2013)와 안선주가 23승, 이지희가 21승, 이보미가 20승, 신지애가 13승, 이영미(54)와 고우순(53)이 각각 8승, 원재숙(48)과 신현주(37)가 각각 6승, 박인비가 4승이다. 통산 승수는 순수 한국선수만의 우승을 집계한 것이다.

 

국내 여자프로골프는 1978년 5월26일에 처음 탄생했다. 경기 양주의 레이크우드컨트리클럽(구 로얄)에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주관한 남자프로테스트 한쪽에서 제1회 여자프로테스트가 열렸다. 이를 통해 강춘자(61), 한명현(1954~2012), 구옥희, 안종현(1956~1982) 등 4명의 한국 최초 여성골퍼가 탄생했다. 테스트를 치르는 3일 동안 강춘자, 한명현, 구옥희가 동타를 이뤘으나 18번 마지막 홀에서 강춘자가 버디를 잡아 한국 여자프로 1번, 한명현이 2번, 구옥희가 3번, 안종현이 4번을 받았다.

 

이들은 열악한 국내 골프 환경과 남자프로대회에 ‘셋방살이’를 하면서 대회에 출전했다. 상금과 규모가 남자대회의 50%도 안 됐고, 1년에 출전할 수 있는 대회 수도 다 해 봐야 10개가 채 안 됐다. 이런 열악한 환경은 선수들의 눈을 일본으로 돌리게 했다.

 

일본의 야구감독이었던 가네다 쇼지의 초청을 계기로 1982년에 구옥희, 강춘자, 배성순, 안종현, 한명현 등이 일본프로대회에 첫 진출했다. 1983년 상반기 한명현이 최초로 일본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이어 1983년 후반기에 구옥희, 1984년에는 강춘자가 프로테스트에서 수석 합격하며 본격적인 일본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회는 출전했지만 기량이 일본선수들에게 뒤지는 데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아 일본 생활은 힘겨운 나날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기 중에 불합리한 판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가 1984년 구옥희가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서 우승을 했다. 구옥희는 2주 연속 우승하며 골프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JLPGA 통산 23승을 수립하며 한국선수들에게 희망을 줬다. 구옥희는 1984년 일본에서 열린 LPGA투어에서 일본프로 자격으로 출전해 3위에 올라 미국행에 나섰다. 구옥희는 1985년 LPGA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한 데 이어 1988년에는 LPGA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클래식에서 우승했다.

 

1988년은 여자프로부가 KPGA에서 독립하면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를 창립했다. 8명으로 출범한 여자프로는 10년 만에 회원 수가 50명으로 늘었다. 지금은 2000명이 넘는다.

 

 

일본으로 대거 진출해 상금왕 독식

 

선수는 늘어나고 대회 수가 부족하자 일단 국내 골프계를 평정하면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영미, 김애숙, 고우순, 이오순, 강수연, 원재숙, 안선주 등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상금왕에 번갈아 가며 오른 뒤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단 구옥희가 다져놓은 자리에 이영미와 고우순이 들어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원재숙, 전미정, 강수연, 신현주 등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앞다투어 일본에 파고들면서 종횡무진 일본 평정에 나섰다. 특히 김애숙은 대회에 출전하면서도 한국에서 오는 후배 선수들의 뒷바라지에도 지극 정성이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전미정이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리고 있지만 스타플레이어는 이보미라는 사실이다. ‘까만 콩’ 이보미는 2015년 상금왕에 오르면서 각종 일본 매체의 표지를 장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보미는 당시 7승으로 2억2581만7057엔을 획득해 일본 남녀골프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최다 상금 신기록을 작성했다. ‘보미 짱’으로 불리며 일본 골프팬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기량이 뛰어난 데다 항상 미소 짓는 미모에 귀염성까지 갖춰 일본인들이 열광한다. 지난해 11월 우승하며 JLPGA투어 통산 20승으로 KLPGA투어 영구 시드를 받은 이보미는 올해 JLPGA투어 상금왕 3연패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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