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재’ 올라 청와대 바라보는 홍석현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8 13:28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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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이광재 등 ‘홍석현 지인’들이 여시재 주도 ‘홍석현式 정치’ 돕는 싱크탱크 역할 가능성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의 회장직 사퇴가 정가(政街)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 전 회장 사퇴는 3월18일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1986년 7월 선친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타계하면서 갑작스럽게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코닝에 입사한 홍 전 회장은 1994년 중앙일보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23년간 쭉 중앙일보와 산하 미디어 계열사를 이끌어왔다. 그런 점에서 홍 전 회장의 사퇴는 전혀 예상치 못한 행보라는 지적이다.

 

현 시점에서 홍 전 회장의 사퇴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왜일까. 우선 시점부터가 미묘한 파장을 낳기에 충분하다. 1949년생인 홍 전 회장은 평소 중앙일보와 JTBC 경영에 큰 애착을 보여왔다. 특히 JTBC가 탄핵 정국을 불러일으킨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한 이후 지상파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자리를 잡자 크게 고무됐다는 후문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여전히 경영일선에 있는 것도 홍 전 회장의 사퇴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2월9일 전북 부안군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2017 학교법인 원광학원 보직자 연수’에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건 오래됐다”

 

중앙일보 주변에서는 홍석현 전 회장을 가리켜 한목소리로 ‘야망이 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홍 전 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게 만든다. 당장 지난해 두 권의 책을 잇달아 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8월 경희대 출판부가 출간한 《꿈꾸는 젊은이, 매력국가의 길》은 홍 전 회장이 2015년 5월 ‘새로운 한·중·일 시대와 대한민국의 꿈’이라는 주제로 경희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쌤앤파커스에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2월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연설에서 홍 전 회장이 “공자도 오십이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알게 됐지만, 그 뜻을 실천한 것은 18년 후인 68세다”라고 말한 것도 곱씹어볼 만하다. 지난해 9월 홍 전 회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분석한 책 《제3의 개국》을 펴낸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공자가 말한 지천명(50세) 때 홍 전 회장은 탈세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공자도 18년이 지난 68세부터 뭔가를 이뤄 나갔는데, 그런 점에서 홍 전 회장이 68세가 되는 때가 바로 2017년”이라고 설명했다. 홍 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다 귀국, 재무장관 비서관·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홍 전 회장이 유엔 사무총장을 꿈꿨다는 것은 여의도 정가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초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2월 주미대사에 취임한 후, 워싱턴 조야(朝野)의 인맥을 발판 삼아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해 7월 ‘삼성 비자금 X파일’ 사건이 터지면서 주미대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홍 전 회장 대신 출마해 당선된 사람이 바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 비자금 X파일 사건만 터지지 않았다면, 홍 전 회장은 지금쯤 유엔 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강력한 대권 후보 자리에 서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홍 전 회장이 중앙일보 자매지인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는 앞으로의 활동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터뷰에서 홍 전 회장은 대권 도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인생을 이해해야 된다. 내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건 오래됐다. 특히 신문사에 와서부터는 남이 안 하는 나라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항간의 소문을 일축하면서도,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 (중략) 유연한 싱크탱크를 해 보고 싶다. 중앙일보 밖에 사무국을 차려 요즘 국민이 한번 풀어줬으면 하는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고 싶다. 예를 들면 교육·청년실업·기업 지배구조·한-중 갈등 같은 것을 선택한다고 하면, 정부의 장관 혹은 부총리 이상 지낸 분을 좌장으로 모셔서 서너 명의 학자와 실제 현장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거다”라고 구상을 밝혔다. 여기서 방점을 찍을 단어는 ‘싱크탱크’와 ‘부총리 이상 지낸 좌장’이다.

 

 

‘여시재’ 이사진, 홍석현 지인들로 구성

 

중앙선데이 인터뷰가 보도된 직후 세간의 이목이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로 쏠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제학 박사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근무해서 그런지 홍 전 회장은 평소 싱크탱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현재 중앙일보에는 통일 문제와 한·중 관계를 연구하는 통일문제연구소와 중국연구소가 있다. 이외에도 중앙일보는 국제 문제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하는 ‘중앙일보-CSIS포럼’을, 제주도·국제평화재단·동아시아재단과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을 열고 있다.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라는 뜻의 여시재(與時齋)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다. 조 명예회장은 서울 불광동 천막목공소에서 출발한 한샘을 국내 최정상 가구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여시재의 출발은 2015년 조 명예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260만 주(4400억원)를 내놓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그는 그해 4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샘드뷰연구재단(2012년 설립)에 한샘 주식 30만 주(507억원)를 출연했다. 여시재는 한샘드뷰연구재단의 출연으로 출발했다. 재단 총재산은 기본재산(자본금) 50억원, 보통재산 250억원 등 총 300억원이다.

 

이사진은 하나같이 홍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출연자인 조 명예회장도 홍 전 회장과는 오랜 지기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여시재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을,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총괄부원장을 맡고 있다. 이 전 부총리가 2012년 자신의 첫 저서인 《위기를 쏘다-이헌재가 전하는 대한민국 위기 극복 매뉴얼》을 펴낸 곳도 중앙일보 계열사인 중앙북스다.

 

이 전 부총리가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 전 지사가 맡은 총괄부원장은 여시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자리다. 이사로는 홍 전 회장을 비롯해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현종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회장 등이다. 일각에서는 홍 전 회장이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전직 부총리급 인사가 이헌재 이사장을 지칭한다고 본다.

 

최근 이헌재 전 부총리는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와의 대담을 엮은 책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는 부제(副題)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세대에 필요한 국가를 말한다’를 내걸었다. 3월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부총리는 “진영 논리나 정파 싸움에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30~40대가 주도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냈다”고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당초 이 책은 지난해 10월에 기획돼 올여름쯤 발간될 예정이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원재 기획이사는 “탄핵 정국으로 돌입한 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숨겨졌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고 생각해 서둘러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여시재 측 설명대로 각 후보 캠프에 정책적 화두를 던져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왜 하필 홍 전 회장 사퇴와 맞물려 책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이광재 전 지사(총괄부원장)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친노(親盧) 직계인 이 전 지사가 현 대권 후보 중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중 누구를 선택할까. 이와 관련해 여의도 정가에서는 안 지사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시절 ‘좌희정 우광재’라고 불릴 정도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를 맡았다. 안 지사를 노 전 대통령과 연결시켜준 이가 바로 이 전 지사다. 실제 이 전 지사는 2011년 4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盧의 남자 중에 가장 정치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안 지사를 지목한 바 있다. 그러면서 2017년쯤 가서 386세대 중에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예견했다.

 

2016년 9월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시재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이광재 총괄부원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이헌재 이사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창호 외신기자클럽 회장 © 연합뉴스


 

‘차기보다는 실세 총리·차차기 염두에 둬’

 

여시재가 향후 홍석현 전 회장 정치권 입문의 싱크탱크가 될 것이냐 하는 점도 최근 정가의 관심이 되고 있다. 결단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여시재와 홍 전 회장은 ‘진영 논리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현재로선 여시재와 관련한 논란은 홍 전 회장이 대선판에 뛰어드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됐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남은 일정을 감안하면 대권에 도전할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확실한 국가 개조 메시지만 갖고 나온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홍 전 회장이 차기 대권보다는 실세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조각(組閣) 명단까지 특정 후보에게 제공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재직 시절 기획한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코리아’가 집권 이후를 염두에 놓고 짠 조각 명단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앙일보 내부 관계자는 “차차기(2022년)에 나가도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똑같은 나이에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총리 등 확실한 정치적 위치를 우선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나나 이광재 전 지사가 홍석현 전 회장과 친한 건 맞다. 하지만 여시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여시재 관계자도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 싫어 출연자(조창걸 명예회장)도 이사직에서 물러난 상황”이라면서 “오랫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만난 분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할 뿐이며 정치적 이해관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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