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은 풍수지리사상 품은 역사적 유산
  • 박재락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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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락의 풍수미학]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전심사에서 ‘등재불가’ 통보…풍수사상 부각시켜야

 

지난 21일 문화재청은 서울의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서 실시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S)의 사전심사에서 등재불가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양도성은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세계유산등재를 위해 심혈을 기울어 왔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유산인 도시성벽과의 비교연구에서 결정적이고 우월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세계유산 등재기준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분히 충족할 수 없다고 판단해 스스로 등재를 철회하였다고 한다.

 

단지 수도를 지키는 도성의 방어기능만을 부각시킨 것은 아닐까. 혹여 도성을 서울 랜드마크로 관광자원화 하기 위한 명분들이 앞서지는 않았는지가 궁금해진다. 등재 사전심사에서 불가 판정이 나온 것은 한양도성 내의 공간설계에 우리 선현들의 자연관과 입지관이 내재된 풍수지리사상이 적용됐다는 사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연친화적인 축성기법들이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고, 조선성리학 사상에 따른 도성의 4대문(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숙정문)과 4소문(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의문)의 공간배치가 4정방(동·서·남·북)과 4유방(동남·남서·서북·북동)에 자리한 유일한 성곽이다. 

 

남산 백범광장에 복원된 한양도성의 모습. ⓒ 연합뉴스

지금의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선정된 후 1396년에 축성됐다. 총 18.6Km에 이르는 성곽이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지어졌다. 오랜 세월동안 보존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도심 공간 속에 왕궁 터가 입지해 자연지세의 성곽을 사이에 두고 시공간을 넘어선 건축물들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우리 선현들이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한 풍수지리사상을 내재해 공간설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양도성내의 공간배치에는 어떠한 풍수지리적 의미가 있을까. 첫째, 산악(山嶽)사상이다. 풍수지리학에서는 산을 용(龍)으로 정의한다. 용은 신성한 동물이다. 산을 용으로 신성시하는 것은 능선을 따라 지맥이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맥이 있듯이 산도 역시 맥이 흐른다. 이와 같은 맥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인식하여 ‘용맥’이라 칭한다. 지금의 한양성곽은 한북정맥에서 뻗어 내린 내룡맥이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세운 곳에 위치한다. 성곽은 네 곳의 산으로 둘러싸여 백두대간맥에서 이어진 살아 있는 지맥이 지금도 흐르기 때문에 아직까지 현존하는 것이다. 서울도심을 위해 도성주변을 개발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좋은 기가 머물 수 있도록 보존하여야한다.

 

둘째, 성곽 내에 위치한 중요한 공간배치를 살펴보면 북악산에서 뻗은 중심룡맥은 경복궁, 청룡지맥은 종묘, 백호지맥은 사직단, 중앙에는 환구단이 각각 입지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중앙은 황제의 공간으로 대한제국의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천자의 제천의식을 봉행했던 곳이다. 그리고 경복궁은 왕의 집무공간으로 역량이 가장 큰 중심룡맥의 지기를 받는 곳에 자리했다. 궁궐의 동쪽에 위치한 종묘공간은 태조 때부터 역대왕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곳인데 지난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청룡지맥은 정신적 지기가 머문 곳으로 조선왕조 500여년의 긴 역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진 이유다. 궁궐의 서쪽에 위치한 사직단은 나라의 안위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인데 백호지맥이 상징하는 백성과 물질적 공간에 부합된 터 잡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국가의 경제력을 돋우는 문…철거된 돈의문 복원 필요

 

셋째, 4대문 중에서 19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돈의문의 복원이 필요하다. 한양성곽은 자연지세에 맞게 동서남북에 각각 입지해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4대문 중 서문인 돈의문은 정동사거리 근처에 터의 위치만 표시석으로 남아있다. 예전의 한양도성의 4대문은 성곽 내에 입지한 궁궐로 지기가 유입되는 유일한 통로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상징적인 표시석은 성곽통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물이다. 더구나 서쪽 방위는 재물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공간이므로 서대문은 국가의 경제력을 돋우는 기가 유입될 수 있는 중요한 문이라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재등재 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동사거리에 돈의문을 복원해야 한다. 서대문의 복원은 향후 세계문화재의 심사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서울 종로6가 동대문성곽공원 내 디자인센터에 개관한 한양도성박물관에 전시된 돈의문 현판을 참석자들이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진국가의 우월성은 문화재의 존재로 대변된다. 한 나라의 역사적 사료와 그 가치는 현존하는 문화재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져야만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한양도성 등재철회를 문제 삼아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한양도성의 세계유산등재를 위해 지금까지 보존만을 내세우고 성곽주변의 도시개발을 막았다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선진국의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우리 문화재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향후 한양도성의 등재를 다시 시도한다면 이번에는 한양도성이 가진 문화적 가치 속에 풍수지리가 내재된 것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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