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치 1번지' 표심의 정체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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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서초구 유권자, 정당 관계없이 엘리트 후보 선호… “지역주의가 당락 좌우”
작심하고 들여다보기 전에는 까탈스럽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선거구가 있다. 신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가 그 곳이다.

총선이나 재·보선이 치러질 때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은 여지없이 표로 나타난다. 여당이라서 되고 야당이라서 안되는 것도 아니고, 영남 출신이라서 되고 호남 출신이라서 안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정치에서 이 지역구만큼 표심의 정체가 관심을 끄는 곳도 드물다.

지난 7월21일 치러진 서초 갑 보선은 이같은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에 입문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는 한나라당 박원홍 후보가, 자민련 박준병 사무총장과 국민신당 박찬종 고문이라는 거물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박후보는 승리 요인으로 이 지역 유권자들의‘한나라당 지지 정서’와‘DJP 견제 심리’ 두 가지를 꼽았다. 한마디로 어느 정당 후보이냐가 선거를 좌우한 주요 변수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호남 출신 김덕룡, 무소속 홍사덕도 당선

그렇다면 정당이라는 기준만으로 강남·서초 표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기관인 ‘소프레스 글로벌 리서치’와 함께 조사한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당 이외에 선거를 좌우하는 기준이 출신 지역·학력·경력·지명도 등 네 가지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우선 정당이 가장 큰 변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15대 총선 때 강남 을구에서 신한국당(현 한나라당) 정성철 후보가 무소속 홍사덕 후보에게 졌다는 데서 확인된다.

‘소프레스 글로벌 리서치’는 강남구와 서초구의 표심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상류층·중산층·엘리트적 특성을 지닌 유권자가 많아 세련되고 대중적인 이미지의 후보를 선호하고, 과거 30여 년 동안 정치적 기득권을 누린 영남 출신 유권자가 많아 대체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 조사 기관의 김헌태 차장은, 과거 기득권층과 상반된 정치적 색채를 지닌 국민회의 등 현재의 여권이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았다.

만약 강남구와 서초구의 표심이 이와 같다면 이 곳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의 표본은 어떨까. 아마도 소속 정당은 한나라당이거나 최소한 무소속이어야 하고, 출신 지역은 영남이거나 최소한 비호남이어야 하고, 학력은 세칭 일류대를 졸업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엘리트로서 손색이 없는 경력에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일 것이다. 이는 이 지역에서 당선되었던 거의 모든 의원이 이같은 자격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된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선거를 좌우하는 기준이 이처럼 다섯 가지에 이르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남 출신이 아니면 당선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13대 총선부터 홍사덕 의원의 핵심 참모로 일하고 있는 손호익 보좌관은 ‘이 곳 선거의 가장 핵심 요인은 역시 지역주의’라고 지적한다. 한나라당이 김찬진 의원(전국구)을 그의 옛 지역구인 서초 갑 보선에 공천하지 않은 것도, 그가 호남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꼭 영남 출신만이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박원홍 의원(대구)과 홍사덕 의원(영주)이 영남 출신이지만 서초 을의 김덕룡 한나라당 부총재는 전북 익산 출신이고, 강남 갑의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은 충남 홍성 출신이다. 특히 호남 출신인 김부총재가 이 곳에서 3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YS라는 대표적인 영남 출신 정치인의 측근이라는 이미지와 막강한 조직 덕분이었다. 서의원의 경우는 최소한 비호남 출신인데다 경제 전문가로서 명성이 높은 그의 세련된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경력 비슷하면 독특한 개성 가진 후보 유리

그럼에도 후보자의 출신 지역이 중요한 것은, 역시 강남과 서초에 모여 살고 있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과반수를 영남 출신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88년 13대 총선 때 이 지역 유권자들이 졸업한 고교를 조사해 보니 남자는 경북고 여자는 경북여고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영남에서도 특히 대구·경북 출신이 이 나라의 상류층과 중산층에 가장 많이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렇다고 강남·서초 표심을 이처럼 출신 지역·정당·화려한 경력이라는 기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홍사덕 의원이 무소속이면서도 신한국당 정성철 후보를 꺾은 것. 변호사인 정후보가 청와대 비서관과 정무차관이라는 화려한 경력과 지명도를 갖추었는데도 패한 것은 이 지역 유권자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손호익씨는 후보자들의 자격이 비슷할 경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 당선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의 다섯 가지 기준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경우는‘교육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강남·서초 유권자들로서는 모든 점에서 자식들에게 장래 모범이 될 만한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설명이 안되면‘친구적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즉, 이들 유권자들은 거의 대부분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층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친구로서 손색이 없는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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