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경제 참모의 학맥과 인맥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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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유학파가 주류… “한국 경제 처방전은 시장경제 원리” 이구동성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직은 그것을 맡은 사람이 아무리 소인이라도 그 이상으로 돋보이게 할 수 있고, 반면에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대통령 직을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갈파했다. 이 말은, 대통령에게는 훌륭한 자질보다 좋은 조직과 보좌진이 더 요구된다는 뜻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각 후보는 한결같이 위기에 처한 경제를 의식해 경제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있다. 후보들이 경제 현안을 인식하는 틀을 만들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 경제 분야 보좌역들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회창·김대중·김종필·조 순·이인제 다섯 후보를 보좌하는 ‘경제 선생’은 누구이며 그들의 경제 철학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각 후보 진영에서는 시장 경제 원리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최고의 처방전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장 경제 원리는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 구조 전체를 시장 경제의 틀 속에서 재구성하자는 정책 이념이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장 경제 정책들이 새삼스레 한국 경제 위기의 해결책으로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의 경제 보좌역들이 대부분 시장 경제 원리가 지배 경제 이념으로 자리잡은 미국이나 영국의 유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이후보의 친동생이자 에너지경제연구원 상임연구고문인 이회성 박사는 미국 럿거스 대학에서 자원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철저한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 엑슨 석유회사 자원경제조사역을 지낸 이박사는, 갖가지 규제를 철폐해 기업이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27일 영입된 남상우 경제특보도 이박사가 추천한 인물이다. 이박사가 70년대 말 한국개발연구원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남특보는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금융·재정 전문가이다. 남특보는 비정기적으로 이후보의 경제 자문에 응하던 정재영(성균관대)·박태호(서울대)·김종석(홍익대) 교수 들을 하나로 묶는 일을 맡고 있다.
신한국당 쪽에서는 서상목 의원이 대선기획단장을 맡아 정치·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이후보를 돕고 있다. 서의원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경제 철학은 남특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규제 철폐를 가장 중요시하는 서의원은 “규제를 풀면 재벌에게 유리하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재벌들은 막강한 로비력으로 어떤 규제도 피해갈 수 있으나 중소기업은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신한국당 이후보가 거느린 당내외 자문단이 수면 위에 드러나 있는 데 반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경제 자문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민회의 이강래 정책특보는 “대학과 연구기관에 있는 경제 전문가 10여 명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개입은 어느 선까지?

김대중 후보는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자처할 만큼 경제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있으며, 미국 망명 시절 <대중 참여 경제론>을 집필했을 정도로 경제에 대한 자기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김후보가 경제 전문가의 조언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라고 자신한다.
당내 조직에서는 김원길 정책위 의장과 장재식 의원이 경제 현안에 대해 조언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지낸 장의원은 조세·금융 전문가로서 이 분야의 정책과 조언을 도맡고 있다. 김원길 의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회 재경위원회에 속한 경제통이다. 김의장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80년대 후반까지 대한전선 부사장과 청보식품 대표이사를 지낸 만큼 실물 경제에 밝다. 김대중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회 예상 질문과 답변을 도맡아 정리하는 김의장은 “시장 경제 원리가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이는 시장 경제 원리를 도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 체제가 뿌리 내릴 여건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자기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원길 의장이 제시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자민련 허남훈 정책위 의장도 동의한다. 개발 독재 시절 상공부와 동력자원부 실무 국장을 지낸 허의장은 경제 개발의 주역이라고 자부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경식 경제팀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는 허의장은 “제일은행에 대한 한은 특융을 실시하려면 좀더 일찍 했어야 했다. 정부가 시장 경제 원리에 집착한 나머지 늑장 대응하는 바람에 제일은행의 대외 신인도를 낮추겠다는 외국 신용평가기관의 위협에 정부가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종필 후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도 재무부장관을 지낸 경제통이다. 김후보 진영의 경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이라는 자부심과 강력한 정부에 대한 향수가 강해, 정서는 정부 주도 경제 체제 쪽인데 겉으로는 시장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조 순 후보는 서울대 교수 시절 제자들이 서로 돕겠다고 나서고 있어 가장 풍부한 경제 전문가 진영을 자랑한다. 그 가운데 핵심은 서준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과 이영선 연세대 교수이다. 특히 이영선 교수는 국민회의가 다수인 서울시 의회로부터 발목이 잡힌 서원장을 대신해 조후보의 제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이교수는 “대선기획단이 꾸려지면 선생님(조후보)을 돕겠다는 제자들이 줄지어 들어올 것이다. 서준호 원장, 경실련의 이근식 교수, 외국어대 김승진 교수, 서울대 정운찬 교수 들이 발벗고 나서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조후보는 얼마 전부터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제자들을 모아놓고 토론한 후 그 결론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아 사태 해결책이다. 모든 정당이 기아를 일단 회생시키고 보자는 견해를 밝혔을 때 오직 조후보측만 기아를 정리하자는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 결론은 시장경제주의에 대한 철저한 신봉에 근거한다. 이영선 교수는 “회사가 경영에 실패하면 합병·매수되거나 정리되는 것이 시장경제원리상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경제 당국이 개입해 삼자 인수가 되니 안되니 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이라면서, 정부는 독과점처럼 불공정 경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비용·저효율 구조 혁신이 차기 대통령의 숙제

지난 9월13일 신한국당을 탈당해 가장 늦게 대선전에 참여한 이인제 후보는 경제 자문위원을 백여 명 거느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가까이서 조언하는 이는 이지사와 경복고 동기인 유한수 포스코경제연구소장과 논산중학교 선배인 오갑수 국제경영개발연구원장이다. 미국 퍼듀 대학 경제학 박사인 유한수 소장은 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위원회 위원을 맡은 금융 전문가로 경제 현안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갑수 원장은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과 드렉슬러 경영 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경영학 박사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 학자답게 이들도 역시 시장 경제를 강하게 주장한다. 이인제 후보의 주요 정책과 텔레비전 토론을 준비하는 오원장은 “세계 경제의 인식 체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경제는 지나치게 정부 주도 경제 정책에 집착해 경제 위기를 자초했다”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대통령학 강좌를 개설해 화제를 일으킨 함성득 교수(고려대·행정학)는,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을 경우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조직과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조직과 체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사람의 두뇌이다. 급변하는 국제 무역 환경에 맞춰 국내 산업 구조를 조정하고 고비용·저효율 경제 체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될 차기 정권에서는 대통령 못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해 경제를 이끌어갈 뛰어난 보좌역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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