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이 국립보건원 맞습니까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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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시설, 사스 방역에 역부족…“미국 질병통제센터 벤치마킹하자”
사스 방역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기관은 국립보건원이다. 이 곳에서 역학 조사와 바이러스 연구 및 각종 방역 활동을 총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녹번동에 있는 국립보건원 방역과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과연 이 곳이 4천6백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곳인지 의아스러워한다.

시골 초등학교 같은 낡은 2층 건물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방역과 사무실. 직원 예닐곱 명이 정신 없이 전화를 받고 있다. 여러 기관에서 문의하는 전화 때문에 언제나 통화중이다. 방역과 직원은 12명이지만 사스와 관련한 업무를 맡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국내 의심 환자 발생 현황, 방역 상황, 해외 동향 파악, 관련 부처 업무 조정, 상부에 올릴 보고서 작성 등을 도맡고 있다.

방역과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들이 북적거리고 실랑이도 벌어진다. 한 방역과 사무관은 ‘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언론과의 전쟁’이라고 투덜거리지만, 실제 혼잡의 원인은 국립보건원에 공보 업무를 전담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아래층에 있는 식약청 공보실 직원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4월 24일에야 보건복지부가 전산·공보 담당을 포함한 직원 4명을 방역과로 보내 업무를 돕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립보건원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처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립보건원 임동진 역학조사관은 “미국의 질병통제센터를 벤치마킹해서 국립보건원을 확대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4월15일 김화중 장관은 보건복지부를 찾은 고 건 총리에게 지금의 보건원 체제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며 국립보건원 확대 개편 의견을 전달했다.

국립보건원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질병통제센터는 어떤 기관일까.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미국 보건부 산하 기관으로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 근교에 본부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국(FDA)·국립보건원(NIH)과 함께 미국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3총사 중 하나다. 식품의약품안전국이 주로 약품 규제 활동을, 국립보건원이 실험 및 연구 활동에 주력한다면, 질병통제센터는 방역 활동을 주로 담당한다. 소속 인력은 8천5백명이 넘고, 그 중 사스를 전담하는 인원만 3백명이다. 지난해 예산이 43억 달러(5조2천억원)에 달했다.

질병통제센터는 의료기관이기 이전에 국가 안보기관으로 간주된다. 질병통제센터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세워졌다. 일본과 싸우던 미군이 말라리아와 같은 동남아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이 시초다.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한국전쟁 와중이었던 1951년이다. 지난 9·11 사태 직후 미국이 탄저균 테러 공포에 휩싸였을 때 질병통제센터는 대(對)생물 테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 기관의 바이러스 대처 능력은 세계보건기구(WHO)를 능가한다. 사스의 인체 잠복 기간이 10일이라는 것을 밝힌 곳도, 공기중 생존 기간이 24시간이라는 것을 밝힌 곳도, 처음으로 진단 시약을 개발한 곳도 이곳이다. 국내 보건 당국은 사스 환자 판별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 외에 질병통제센터 지침을 준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를 움직이는 간부들도 대부분 질병통제센터 출신이다.

질병통제센터 안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가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보건 정책에 대한 비용 편익 분석을 하기도 한다. 또한 보건 행정 기능도 있어서 긴급 사태가 발생할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립보건원의 한 관계자는 “질병통제센터는 국가 질병 관리 업무를 일원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현재 우리 나라 국립보건원은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국립보건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국립보건원을 합친 규모와 비교해보면 한국 국립보건원 인원은 약 120분의 1, 예산은 700분의 1 수준이다. 국립보건원 관계자는 “미국이 경제 대국이라지만 한국 GNP가 미국의 20분의 1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은 지나치게 투자가 적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국립보건원을 질병관리본부(본부장 1급)로 격상한 다음 장차 질병관리청으로 개편할 안을 가지고 있다. 직원도 현재 1백75명에서 7백15명으로 충원할 계획이다. 미국처럼 연구 기능과 방역 기능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다소 절충된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직 확대에 대한 이견도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 방역과 관계자는 “조직만 커지는 것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자리 나눠먹기가 될 수 있다. 국립보건원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보건복지부 역할은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사스를 빌미 삼아 조직을 더 키우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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