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점령한 ‘네오 콘 군단’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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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지구’ 건설이 목적인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의 인맥·실체·영향력은 그 자체가 ‘충격과 공포’이다
1981년, 세계는 미국 국방부 고위 관리가 불쑥 던진 말 한마디에 섬뜩한 전율을 느껴야 했다. 발언 당사자는 국방부 서열 4위인 토머스 존스 전략전술핵 담당 부차관. 그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미국이 설령 소련과 전면 핵전쟁을 벌이더라도 2~4년이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 내 매파 인사들의 호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례다.

무대를 옮겨 공화당 조지 H. 부시 (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 행정부 시절로 가보면 더욱 놀랄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1992년 봄, 매파의 선봉장인 폴 월포위츠 국방 차관은 ‘국방계획 지침’이라는 비밀 메모를 작성했다. 핵심은 ‘봉쇄 전략은 냉전의 유물에 불과하므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불량 국가에 대해서는 선제 공격을 가하고, 필요하다면 단독 군사 행동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메모는 <뉴욕 타임스>에 의해 폭로되는 바람에 빛을 보지는 못했다.

다시 1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난해 6월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 참석해 “우리는 안보를 위해, 우리의 자유와 삶을 보호하기 위해 전향적이고 단호한 자세, 그리고 군사적 선제 행동을 준비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제공격론을 안보 전략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월포위츠가 주장한 선제공격론이 ‘부시 독트린’으로 둔갑해 당당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이같은 부시 독트린의 첫 시험대였으며, 매파에게는 세력 확장을 꾀할 절호의 기회였다.

바로 그 매파가 부시 행정부에서 과거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제2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매파의 정체는 무엇보다 대외 문제에 관한 한 ‘고립주의’(미국 외교 노선의 한 흐름을 지칭하는 용어. 미국은 미국의 국익에 직결되지 않는 한 다른 대륙 문제에 개입하지 말고 고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를 선호해온 전통적 보수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이들은 미국의 가치와 국익에 맞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극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창해온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s)’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국익에 어긋나는 동맹국의 견해나 국제법·국제 협약·군축 협정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또 중국처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것도 싫어한다. 지독한 친이스라엘파인 이들은 중동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이라크뿐 아니라 이란·시리아에서도 정권 교체가 필요하며,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책도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한다(66쪽 딸린 기사 참조).

워싱턴 외교가에서 흔히 ‘네오콘(neocon)’으로 통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의 파워는 행정부 안팎에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계된 인맥에서 나온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선제공격론이 부시 행정부의 대외 안보정책으로 굳혀진 뒤 네오콘의 힘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백악관에는 신보수파의 사령탑 구실을 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루이스 리비 비서실장이 버티고 있다. 이라크 전쟁 승리 이후, 국무부의 고유 영역인 외교 분야까지 참견하는 국방부의 경우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은 물론이고 월포위츠 부장관과 더글러스 차관 등 수뇌부 3인 모두가 신보수주의자로 분류된다. 심지어 이념과는 거리가 먼 국무부에도 서열 3위인 존 볼턴 차관이 신보수주의 신봉자로 버티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기업연구소(AEI) 등 각종 보수적 싱크 탱크에 두루 포진해 있다. 특히 1943년에 창설된 미국기업연구소는 신보수주의 시조 격인 어빙 크리스톨(83)을 비롯해 리처드 펄·진 커크패트릭·마이클 리든·윌리엄 슈나이더·뉴트 깅리치 등 쟁쟁한 네오콘들이 포진해, 신보수주의자들의 보금자리로 꼽힌다. 이곳은 또한 체니 부통령의 부인인 린 체니가 선임연구원으로 몸 담고 있어 더욱 성가를 발휘한다.
친이스라엘 로비 조직도 대다수 친이스라엘계인 신보수주의자들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기관이 1974년 설립된 유태인국가안보연구소(JINSA)이다. 한때 체니 부통령·페이스 국방 차관·볼턴 국무 차관을 이사진으로 두었을 만큼 이 조직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조직이 매년 예산의 상당 부분을 미군 퇴역 장성들을 이스라엘로 보내 ‘친이스라엘 맨’으로 만드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라크 군정 책임자인 제이 가너 예비역 중장도 이 프로그램의 직접적인 수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주요 활동 무대인 <월 스트리트 저널>이나 <워싱턴 타임스> 같은 보수 매체들의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네오콘의 ‘바이블’로 통하는 시사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는 발행 부수는 5만5천에 불과하지만, 이 잡지가 배포되는 매주 월요일이면 체니 부통령이 30부를 구입해 부하 직원들에게 읽힐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헤리티지 재단의 존 헐스먼 연구원은 이 잡지를 부시 행정부의 기관지라고 꼬집는다.

텔레비전 방송의 시사 대담 프로도 신보수주의자들의 주요 활동 마당이다. 대담 프로의 단골 손님으로는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인 빌 크리스톨을 비롯해 <워싱턴 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개프니,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새머, 보수 칼럼니스트 칼 토머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로버트 케이건 등이 꼽힌다.

네오콘의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끈끈한 유대와 결집력. 이들의 끈끈한 인맥을 두고 워싱턴의 외교 평론가인 짐 로브는 “신보수주의자들은 부시 행정부 안팎에서 혈연 또는 개인적 유대를 통해 단단히 뭉친 일종의 부족 집단 같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네오콘의 ‘부족성’은 신보수주의 시조 격인 어빙 크리스톨의 계보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그의 아들은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인으로서 신보수주의의 기수인 빌 크리스톨이다. 과거 댄 퀘일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정계에 입문한 그는 그 덕에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실력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신보수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요즘처럼 각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후반 태동기 에만 해도 이들은 대부분 학계나 연구소, 또는 언론에 몸 담고 있던 ‘조용한 신사’들이었다. 어빙 크리스톨을 포함해 노먼 포드호레츠와 제임스 윌슨으로 대변되는 네오콘 1세대는 실은 우파가 아닌 좌파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1950∼1960년대 동유럽 위성국에 대한 옛 소련의 잔인한 탄압을 목도하면서 이들은 철저한 반공 우파로 전향했다.

이들의 뒤를 이은 네오콘 2세대는 행정부와 의회에 진출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 관철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집단의 대표적인 ‘행동파’는 폴 월포위츠와 리처드 펄이었다. 당시 이들은 서로 합심해 소련과 군축 협정을 마무리지으려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안에 설치된 ‘Team B’를 통해 이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1980년대 초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성 시대를 맞았다. 이는 레이건 행정부 1기 때 정부 요직에 등용된 인사들의 면면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등용된 인사들 가운데 신보수주의자 계열이 33명에 달했으며, 그 가운데 20여 명이 외교·안보 분야 직책을 맡았다. 리처드 앨런 국가안보보좌관·윌리엄 케이시 중앙정보국장·진 커크패트릭 유엔대사·유진 로스토우 군축국장·조지 슐츠 국무장관·리처드 펄 국방 차관보가 그들이다.

부침을 거듭하던 신보수주의자들은 1990년대 후반 탄생한 ‘미국 신세기 계획’(PNAC)을 통해 또 한번 전기를 맞았다.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2기 때인 1997년 빌 크리스톨이 설립한 미국신세기계획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한마디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세계 질서 창출이었다. 실제로 이 단체는 설립 취지문에서 행정부에 대해 미국의 국익에 적대적인 정권에 적극 대응하고 미국에 유리한 국제 질서를 창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조직을 신보수주의자들의 단순한 사랑방이 아닌 강력한 파워 집단으로 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설립 취지문에 서명한 인사 25명 가운데에는 체니 부통령을 포함해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루이스 리비 대통령 비서실장·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신보수주의자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공을 체니에게 돌리고 있다. 부시가 선거에서 승리한 뒤 정권인수반장을 맡은 체니가 월포위츠·펄·페이스·볼턴·리비 등 ‘심복’들을 모조리 행정부로 불러들인 결과라는 것이다. 일단 행정부 요직을 차지한 이들은 ‘외교 문외한’인 부시의 무지와 무경험을 호재로 삼아 미국의 외교 정책을 떡 주무르듯 했다.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신보수주의자들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크리스톨은 <위클리 스탠더드> 최근호에 실린 논설에서 ‘필요하다면 선제 공격을 감행해서라도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 전세계의 독재자들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부시 행정부에 주문했다. 마이클 리든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이라크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계속 전진해야 한다”라며 전선 확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헤리티지 재단의 전통적 보수주의자인 존 헐스먼 연구원은 “부시가 전선을 확대할 경우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부시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외교 전문가들은 부시가 네오콘의 뜻에 따라 전선을 확대하기보다는 불황 때문에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는 내치에 치중하며 내년 11월 재선을 목표로 총력전에 나설 것으로 본다. 재선에 실패하면 그는 물론 백악관의 네오콘도 동시 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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