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위한 ‘긴 싸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10돌 <문화과학> 발행인 강내희/‘문화 정치 통한 사회 변혁’ 한걸음


강경대가 죽고 서태지가 등장했던 그 해에 <문화과학>은 탄생했다. 이념의 시대가 가고 소비의 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던 그 시기 ‘문화 정치를 통한 사회 변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앞에 다가왔던 이 잡지가 최근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창간을 주도한 이 잡지의 발행인 강내희 교수(중앙대·영문학)에 따르면, 속칭 강경대 사건 이후 진보 운동권 진영은 패색이 뚜렷했다. 이미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줄줄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은 ‘답이 너무나 빤히 보이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철인 경기 하듯 힘들게 잡지 만들어



그는 이런 고답적인 강령 대신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주제들, 곧 육체·언어·욕망 따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이 어떤 형태로든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때마침 그는 같은 고민에 빠져 있던 동지를 만났다. 서울미술관 학예실장으로 ‘민족 예술인 총연합’(민예총)에서 활약하던 미학자 심광현씨였다. 훗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이 된 심씨는, 문화 이론지를 창간해 보자는 강교수의 제안에 이렇게 화답했다.


“당신, 철인 10종 경기 할 수 있어?”
실제로 그 뒤 두 사람은 철인 경기를 하듯 잡지를 만들어 왔다. 계간지이면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소집되는 <문화과학> 편집회의는, 말이 편집회의이지 웬만한 대학원 뺨치는 강도 높은 세미나 일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박거용(상명대 교수)·원용진(서강대 교수)·이득재(대구가톨릭대 교수)·이성욱(문화 평론가)·태혜숙(대구가톨릭대 교수)·홍성태(상지대 교수) 씨가 이 회의를 거쳐간 편집위원. 무산되는 일이 한 해 평균 서너 차례에 불과하다는 이 회의는 현재까지 4백 회 이상 이어지고 있다.



초창기 이들은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한 마르크시즘적 전통과 푸코·들뢰즈·가타리 따위를 중심으로 한 비마르크시즘적 전통을 접목하면서 ‘유물론적 문화론’이라 이름 붙일 만한 새로운 변혁 이론을 가다듬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이들은 미디어·광고·과학 기술 따위에 나타난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문화가 정치나 경제의 종속 변수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체제 전복의 원동력임을 입증하려 했다.



<문화과학>은 <상상> <리뷰> <이다> <오늘예감> 같은 문화 계간지 또는 동인지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잡지 중 상당수가 단기간에 명멸하다 사라진 것과 달리 <문화과학>은 살아 남았다. 생존 비결은, 자기 반성 및 자기 극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문화과학>은 3년 전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를 만드는 데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강내희 발행인은 문화연대 정책기획위원장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문화 분야 시민단체라 할 이 단체는, 민감한 사회적 현안이 터질 때마다 발 빠르게 움직이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다양한 욕망을 인정하는 사회, 나아가 다양한 인종·성·계층을 인정하는 ‘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간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싸움을 포기한 일이 없다”라는 것이 강내희 교수의 말이다. <문화과학>은 오는 5월4일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서 ‘이데올로기와 욕망-즐거운 혁명이다!’를 주제로 창간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갖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