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클린턴 ‘난감’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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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강력 제재 못할 형편 …‘외교적 해결’ 기대

 지난 1월 초순까지도 순조로워 보이던 미 · 북한 핵 협상 타결 전망이 또다시 불투명하다. 현재 쟁점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한 핵시설 전부에 대해 ‘전면 사찰’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같은 요구는 국제원자력기구가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주장은 다르다. 지금까지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와도 전면 핵사찰을 약속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 속에 최근의 북한 핵 문제 핵심이 담겨 있다.

 현재 사태를 이해하려면 1월 초순으로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국무부의 린 데이비스 국제안보담당 차관은 “북한이 신고한 7개 핵시설에 대해 사찰을 받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합의된 사찰 방식이 어떤 것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핵 안전 조처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사찰을 받을 것”이라고만 했다. 바로 이 말이 화근이 됐다. 미국의 양보에 불만을 품은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과의 핵사찰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신고된 7개 핵시설에 대한 전면 사찰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면 사찰은 사실상 통상 사찰의 범주를 넘어선 특별 사찰을 뜻한다. 북한은 예상대로 이같은 사찰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확산금지조약상의 핵안전협정이 요구한 범위 안에서 사찰을 받겠다고 주장해 왔다. 이 경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한 범위 안에서 사찰을 받으면 되며, 특별히 전면 사찰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이처럼 국제원자력기구와 북한과의 사찰 협상이 꼬이기 시작한 가운데 불거져 나온 것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도입 문제다. 미국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 미 상원은 북한과의 핵 타결 전망이 어두워지자 경제 제재 조처와 함께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북한은 1월31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영원히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같은 갈등은 2월21일 국제원자력기구의 정기 총회를 앞두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공공연히 천명해 왔다.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온 미 국무부마저도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의 북한 핵 문제는 안보리로 회부되느냐, 외교적 합의를 통한 극적 타결을 이뤄내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설령 북한 핵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되더라도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협조 없이는 구속력 있는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을 제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 대북 제재를 선뜻 취할 수 없는 클린턴의 고민이 있다.
卞昌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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