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은 핵으로만 억지할 수 있다
  • 성병욱 |중앙일보 주필 ()
  • 승인 2011.03.07 11: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의 핵무장과 관련해 미국 백악관의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이 “한국이 미국에 전술핵 무기 재배치를 공식 요구하면 미국은 응할 것이다”라는 사견을 밝혔다. 이틀 후 백악관은 국가안보회의 부대변인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가 전술핵 무기를 한국에 반입할 계획이나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공식 부인했다.

핵심 당국자의 사견을 빌려 재배치 가능성을 내비치고 다시 공식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 꼭 1991년 이전 한국에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을 때 그 사실 여부가 문제되면 NCND(확인도 부인도 않는다)의 모호한 태도를 견지했던 것과 흡사하다.

핵무기 배치에 관한 한 관계 기관의 공식적인 언명이 꼭 사실이나 입장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견임을 내세워 그런 민감한 문제를 제기한 미국측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 등을 상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게임을 본격화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것인가 여부는 미국과 더불어 한국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중대 사안이다. 한국의 요청이나 승인 없이 주한 미군기지에 핵무기가 배치될 수는 없다.

1991년 이전 우리 영토에 미국의 전술핵 무기가 배치되었던 것은 미국이 NCND를 했음에도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가 없었지만, 재래식 무기와 화학무기·생물학무기 등 비대칭 전력에 의한 북한의 공격을 근원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1992년 초 노태우 대통령 정부와 북한 간에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이 서명·발효되면서 한·미 협의를 통해 남한 내 전술핵 무기는 모두 철거되었다. 이 공동선언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과 핵 재처리 및 농축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했지만 지금 보면 북한은 처음부터 지킬 의향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 10년간은 비밀리에, 2000년대 들어서는 내놓고 이 선언을 무시해왔다.

따라서 아직도 이 선언에 묶여 우리가 전술핵 무기 재배치나 독자 핵무기 개발을 머뭇거린다면 바보짓이다. 다만 핵무기 개발은 비핵화 선언 외에도 전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민감한 일이다.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궁극적으로 핵무기 사용과 핵 공갈을 억지할 수 있는 방법이 대응 핵무기를 통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북한 핵에 대비해 미국의 확장 억제라는 ‘핵 우산’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를 상대로 해서 미국 본토와 해외 미군 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핵무기가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북한 보유 핵무기에 대해 공포의 균형을 통한 핵 억지력을 적실하게 발휘할 수 있을까.

수차례 핵실험 후 북한은 툭하면 대남 ‘핵 참화’ ‘핵 공격’이라는 위협적 언사를 입에 달고 있다. 핵 공격까지는 몰라도 핵 공갈을 통해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남측에 강요하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도 북한이 우리만큼 공포심을 가질 정도의 핵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 급하다. 전술핵 무기의 남한 내 재배치야말로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첫 단계 조치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