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오른 ‘김정일의 유산’
  •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
  • 승인 2011.12.2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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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손에 들어간 북한 핵 향방에 관심 집중…이전처럼 포기 않고 ‘전가의 보도’로 쓸 듯

지난 10월24일 제네바에서 북핵과 관련한 2차 북·미 회담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는 미국의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운데). ⓒ AP연합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사하면서 어린  김정은에게 물려준 유산 중 정권 유지에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것은 바로 핵이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 있는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핵 개발을 지속함으로써 국내 정치적으로 그의 권력을 지탱해줄 군부나 공안 기구의 보수적인 간부들을 선군 정치로 우대할 것임을 보여주어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다. 배고픈 주민들에게는 강성 대국의 환상을 보여주어 자부심을 갖게 해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체제 경쟁에서 멀찌감치 앞선 남한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유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또한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 공격을 억지하고, 미국이 북한과 협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술 지팡이이다. 특히 국제 정치적으로 볼 때 북한에 핵이 없다면, 그저 세계 1백50위권의 보잘것없는 가난한 나라에 불과하다. 따라서 김정은 부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다름없이 북한 영도자의 전유물인 핵을 손에 쥐고 미국을 위시한 주변 강국들과 국제 정치 게임을 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은 핵협상 응하며 시간 벌 가능성 커

이러한 핵의 다용도성과 절대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핵을 물려받아 굳세게 이를 개발해왔다. 그 결과 북한은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상당한 무기화 기술을 습득했고, 핵탄두 여섯 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kg을 확보했으며, 1년에 핵탄두 하나 이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2천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시키고 있다. 또한 핵탄두를 운반할 미사일 부문에서도 기술을 수출할 정도의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1998년, 2006년, 2009년 6백50kg 이상의 탄두를 싣고 5천km 이상의 장거리를 비행하는 대포동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1t 정도 무게의 조악한 핵탄두로 한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졌거나, 아니면 수년 내에 가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시찰한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최근 북한이 한 차례의 핵실험만 더 하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취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한의 핵탄두가 아직 너무 크고 무거워서 전폭기나 미사일로 남한이나 일본을 공격하려 할 때 발사 초기에 요격된다면 오히려 북한이 핵 재앙을 겪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비록 북한의 핵 공격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보장을 받고 있어 북한의 공격 직후 북한 역시 미국의 보복 핵 공격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가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핵의 실전 능력을 가졌을 때 남한이 겪게 될 다양한 위협은 괴로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아무리 북한을 능가한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남한을 제쳐두고 미국만 상대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꺼내들려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남한에 대해 국지적인 선제공격을 가한 뒤 남한이 보복 공격을 가하려 할 때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 공멸의 각오를 과시한다면, 남한 군은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남북 간에 전면전이 벌어져 미국이 증원 전력을 보내려 할 때 북한은 핵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며 이를 억지하려 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낳고 있다. 최악의 경우 북한이 붕괴 직전의 경제 위기를 맞으면, 핵을 빌미로 남한과 미국 일본에게 “공멸하지 않으려면 경제 지원을 하라”라고 위협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 정권은 이미 수년 전부터 주민들에게 2012년 강성 대국 진입을 알려왔으므로 경제 상황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은 부위원장은 아직 주민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 없으므로, 북한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라도 북핵 회담에 응하면서 미국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고 경제 지원도 받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군부나 공안 기관은 김부위원장이 핵문제에서 양보하는 등 섣불리 대남·대미 화해 정책을 펼칠 경우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김부위원장은 단기적으로는 핵 협상에 응해 일단 국제적으로 후계 체제 구축의 시간을 벌되, 끝내 핵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무력 기관의 불만 소지를 제거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력 흔들리면 ‘핵 통제’ 더 위험해질 수도

지난 6월27일 MBC가 보도한 북한 영변 핵시설 영상. ⓒ EPA연합
김정은 체제 구축의 장래 시나리오와 관련해 다른 우려들도 제기되고 있다. 먼저 북한 내 권력 투쟁이 심화되어 혼란에 빠질 경우 핵무기나 핵물질의 관리 통제가 붕괴되면 누출이나 폭발 또는 외부로의 유출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비해 한·미 양국은 ‘개념 계획 5029’를 ‘작계 5029’로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한국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의 특수부대가 이를 통제하기 위해 침투하게 되어 있다. 또한 핵의 회수나 무력화가 어려울 때는 스텔스 폭격기로 이를 정밀 폭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거나 핵이 폭발할 위험마저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핵 재앙마저 우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이를 묵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북한 내에 내전이 벌어질 때 북한 정권의 요청에 의해 중국군이 북한 내로 진주할 수도 있다.

특히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향후 공고한 권력을 수립하지 못할 경우이다. 그럴 경우 자신이 선군 정치를 계승했음을 보여주어 군과 공안 기관의 충성심을 획득하는 동시에 강성 대국의 업적 과시를 통한 주민들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3차 핵실험 등 핵 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있다는 전망도 있다.

김정일 사후 중국과 미국은 신속하게 김정은 체제를 지지하거나, 사실상 묵인하는 대응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 체제의 위험성을 그만큼 크게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조문을 허용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역력하다. 전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사실상 핵 보유를 묵인할 가능성이 크므로 북한의 핵 보유나 핵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을 한국 정부가 향후 가장 선도적이고 창의적이며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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