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마이웨이’가 추락 불렀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12.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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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 검찰, 차기 정권에서 개혁 폭풍 맞을 듯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11월30일 검사들의 억대 뇌물 사건과 성추문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며 사퇴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한상대 검찰총장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검찰 내 평검사뿐 아니라 간부들까지 한총장의 퇴진을 줄기차게 요구했음에도, 강하게 버틴 그였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자신의 ‘우군’인 검찰 간부들조차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불명예 차원을 넘어 치욕스러운 퇴진이었다. 상명하복 체제인 검찰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그는 11월30일 사직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바로 수리하면서 ‘검란(檢亂)’은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그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1차 원인은 김광준 부장검사의 9억원 수뢰 및 전 아무개 검사의 피의자 성추문 사건이었다. 일련의 검찰 추문 사건이 터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김부장검사의 사건이 터질 때만 해도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경찰의 검찰 흠집 내기 전략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대립하는 검·경 간에 첨예한 갈등 기류가 흘렀다.

“한총장 체제에서 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전검사의 성추문 사건까지 터지면서 검찰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한총장 퇴진론에 가속도가 붙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전검사 사건 직후 만난 검찰의 한 간부는 “솔직히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다. 한총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한총장 체제가 들어선 다음부터 되는 일이 없다”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에 서울 남부지검 윤대해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뒤에 벌어진 후폭풍도 ‘울고 싶은’ 한총장의 뺨을 때렸다. 윤검사의 검찰 개혁 촉구안이 검찰의 짜여진 각본처럼 진행되는 것으로 비친 문자메시지를 실수로 언론사 기자에게 발송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가려졌던 검찰의 추악한 모습이 다 드러났다”라는 비난이 일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급기야 검찰총장 직할 부대인 대검 중수부의 최재경 부장까지 정면으로 한총장의 용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한총장은 최부장이 김광준 부장검사와 주고받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듯한 ‘언론 대응 방식’ 문자메시지에 대해 대검 감찰본부에 감찰을 지시했다. 직속 상관과 부하가 대립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벌어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한총장의 퇴진에는 ‘김광준 부장검사-전 아무개 검사-윤대해 검사’ 사건 등 잇달아 터진 검사 추문들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8월 취임한 후부터 한총장이 검란의 불씨를 키워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배들과 ‘소통’이 잘 되었던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오른 이후에는 ‘불통’의 대명사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선후배들과 잘 통했던 그는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검찰총장이 된 다음에는 ‘마이웨이’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후배들의 충정 어린 고언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내곡동 사저 사건과 디도스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총장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후배 검사들이 몇 차례 진언하기도 했는데 결국 묵살당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터진 이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이대통령을 비롯해 아들 시형씨 등 관련자 일곱 명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올해 1월에 터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6월의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 때에도 부실 수사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내곡동 사저와 디도스 공격 사건은 특별검사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 수사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사 성과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에게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한 것과 관련해 “한총장이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최저 형량인 4년 구형을 밀어붙였다”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최재경 중수부장을 비롯한 ‘특수 수사통’ 검사들이 한총장에 대해 ‘불신임’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한총장이 ‘중수부 폐지’와 같은 개혁안까지 들고 나오면서 검찰 내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특수통 검사들뿐 아니라 대검 간부들조차 중수부 폐지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수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가 지난 11월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특정 학맥 중용으로 임기 초반부터 불씨 키워

특히 한총장이 ‘특수통’을 견제하기 위해 특정 학맥을 중용하면서 내부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관측이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한총장은 검찰의 핵심 포스트에 고려대 출신들을 기용했다. 한총장이 부임하면서 ‘공안통’에 힘이 실린 것도 검찰 내부에서 반발을 초래했다.  

‘기획통’인 한총장은 이대통령과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 임명될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견해가 엇갈렸다. 하지만 이대통령은 그를 낙점했다. 그러면서 “현 정권의 정권 사수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검찰 안팎에서 일찌감치 흘러나왔다. 여권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도 권재진 법무부장관과 한총장의 발탁에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되었다. 검찰총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총장이 후배들의 고언에 귀를 닫았던 것이 사퇴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한총장의 자승자박이다. 안타깝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역대 대선 정국 때마다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렀던 검찰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그동안 “정권은 우리 손에서 나온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검찰이 잔뜩 주눅든 채 고개를 숙였다. 역대 여야 대선 주자들이 검찰의 눈치를 보았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오히려 검찰이 대선 주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할 형편이다. “검찰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한숨밖에 안 나온다”라는 검찰 간부의 한탄도 들린다. 검찰은 이제 ‘정권 만들기’는커녕 차기 정부의 최우선 개혁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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