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되는 북한 우방국의 ‘김정남’ 파열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2.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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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을 둘러싼 중국-말레이시아-북한의 불편함

김정남 피살 사건은 북한의 우방 국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자연스레 그들 간 관계도 묘해지고 있다.

 

김정남이 사망한 곳은 말레이시아다. 북한과 말레이시아 관계에 변화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에 몇 안되는 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고 알려진 북한이지만, 외교부가 펴낸 외교백서에 따르면 북한과 국교를 수립하고 있는 곳은 161개국에 달한다. 특히 동남아 국가와는 오래 전부터 국교를 수립하고 북한 대사관을 설치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말레이시아는 북한 관계자에 대한 출입국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곳이다. 대북 관계 전문가는 “동남아 중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 국적 취득이 쉬운 국가의 경우 북한인이 현지 국적을 직접 취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 시절인 2009년, 북한과 말레이시아 양국은 상호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무비자 협정을 체결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첫 국가였다. 북한은 2003년부터 쿠알라룸푸르에 대사관을 설치했고, 말레이시아는 내년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2011년 4월부터는 북한의 유일한 항공사인 고려항공이 평양과 쿠알라룸푸르 사이에 직항편을 띄우고 있다. 이 정도로 가깝다.

 

© 연합뉴스

북한, 비밀 회담 필요할 때마다 말레이시아 선택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참가하는 회담 장소로 자주 지목됐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6자 회담의 무대에도 자주 선정됐다. 때로는 비밀 회담 장소로도 쓰였다. 지난해 10월 한성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미국의 북핵 전문가들이 비밀리에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도 장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2013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말레이시아 헬프 대학의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은 조선중앙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뒤에야 세상에 드러났고, 말레이시아 내부에서도 비난 여론이 일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친밀해진 데는 북한의 동남아 거점 이동 정책과 맞물려 있다. 2005년 9월 미국 정부는 북한과 거래하던 마카오 소재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하고 미국과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이후 북한은 동남아로 눈을 돌렸다. 말레이시아 등에도 비밀 계좌를 개설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이런 친밀함 때문인지 김정남 역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살아있을 때는 쿠알라룸프르 북한 대사관을 통해 재정적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0~2013년 사이 주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김정남을 후원했던 고모부 장성택의 조카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이 사망하자 북한 정부는 시신을 즉시 반환해달라고 요청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추가 조사의 필요성 등을 요구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북한 정부의 요청에 부응하겠다”고 말하며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절차를 거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공항에서 해외 로얄 패밀리가 암살되는 일이 벌어졌기에 공정하고 과학적인 절차를 거쳐 수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 언론에 따르면 북한 측은 “부검은 필요없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말레이시아 경찰은 상관없이 강행했다. 시신 부검은 2월15일 밤에 종료됐는데 주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부검 장소에 입회하는 등 긴장감이 흘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큰 위기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말레이시아 경찰이 수사 결과에서 김정남 피살의 배후로 ‘북한 정부’를 지목할 개연성도 있기에 여전히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교적으로 고심해야 할 상황은 남아 있다.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2월16일북한이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수사절차가 마무리된 후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보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 AP연합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에 따라 우방국 골머리 앓을 수도

 

중국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일단 김정남이 사망한 말레이시아는 중국의 주요 관리국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으로 중국과 대립해왔다. 하지만 작년 말 말레이시아가 중국산 군함을 구입하기로 하는 등 중국과 군사·경제 분야에 걸친 협력에 합의하면서 해빙모드에 돌입했다. 일각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친중 노선’으로 갈아탔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말레이시아와 중국 관계에 변화가 감지된 때는 2015년이다. 당시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던 말레이시아에서 국부펀드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미 국무부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연루 가능성을 지목하며 문제 삼았다. 반면 중국은 기업을 통해 문제가 된 국부펀드의 자산을 매입하며 말레이시아를 측면에서 거들었다. 

 

중국 내부에서는 김정남이 사라지자 “중요한 외교 카드를 하나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씨와 그의 가족은 베이징과 마카오에 머물면서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변고가 생길 경우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의 문화를 볼 때 김정남은 중요한 조커 중 하나였다. 중국이 그를 보호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종의 견제책이기도 했다. 그런 카드를 중국이 공들이던 말레이시아에서 잃은 셈이다. 김정남 살해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를 북한, 그리고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는 말레이시아 모두에게 중국이 언짢을 대목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하나다. “신중하게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다.” 단 김정남 암살과 관련된 언론 보도의 유입을 막느라 지금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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