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域(성역)이 무너졌다
  • 송창섭·유지만·안성모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2.18 11:30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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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새로운 변화 예고

성역(聖域)이 무너졌다. 대한민국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단순히 

한 기업 총수의 구속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제에, 그리고 정치에, 나아가서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이재용 구속’이 갖는 의미를 진단해 본다.   

모든 것이 역사에 기록될 만했다. 요즘 말로 치면 모두가 ‘역대급’이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만 7시간30분이 걸렸다. 역대 최장 시간이다. 피의자심문 후 최종결정까지 걸린 시간도 무려 12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도 숨죽이며 법원의 판단을 지켜봤다. 그리고 장고(長考) 끝에 법원은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2월17일 오전 5시36분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일가에 430억원대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물론 구속 수사가 곧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최대 기업, 세계적 글로벌기업 삼성은 총수 첫 구속이란 사태에 직면하며, 충격에 빠졌다.

 

2월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 총수는 절대 구속되지 않는다?”

 

재계 전체도 충격에 휩싸인 상태다. 이 부회장 구속에 따른 불똥이 행여나 자신들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간 재계는 “일반 형사 사건이었으면 절대로 구속 기소시킬 수 없는 법리적인 허점이 굉장히 많은 사건”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해 왔다. ‘국민감정법’이라는 초헌법적 발상으로는 처벌할지 몰라도, 실정법이 정한 원칙에서는 절대 구속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중요한 함의(含意)가 숨겨져 있다. 법리적으로 어떤 부분이 약한지를 살펴봤다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삼성 총수는 절대로 구속되지 않는다”는 내재된 경험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삼성그룹 총수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구속되지 않았다. 위법 사항은 발견됐지만 수감이라는 법망을 쉽게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삼성 총수도 구속될 수 있을까’라는 고정관념은 대중의 뇌리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삼성 내에서도 ‘총수 구속’은 ‘노조 설립’과 함께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종의 금기어와 같았다.

 

또,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삼성의 상징성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삼성은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이자, 다른 말로 하면 성역과 같다. 삼성을 비롯해 경제계 및 주요 언론들이 이 부회장의 구속 심사를 앞두고 ‘삼성의 위기=대한민국 위기’라는 프레임을 짰던 것도 더 이상 나쁜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봐서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법 앞에 성역이란 없다’는 선례가 남겨졌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오히려 외신은 차분하게 이 부회장 사태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AP통신은 이 부회장 구속 직후 서울발 기사를 통해 “삼성을 사실상 경영하는 이 부회장의 구속은 재계와 재벌개혁 세력에게는 충격일 수 있겠지만,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엘리트 집단을 향해 관용을 베풀었던 과거와 달리 사법 정의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도 불가피해졌다. 당초 삼성은 이건희 회장 살아생전에 지주회사 설립 등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도 큰 틀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11월30일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의 자회사인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이 “앞으로 기업 지배구조 검토 후 보다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한다”며 지주회사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때만 해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쉽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앞서 삼성전자는 공시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 방안으로 배당확대 등 주주환원을 비롯하여 회사성장 및 주주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등 기업구조 변환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길어도 3~4년 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 중인 다른 대기업들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다. 순환출자구조 문제는 현대차·SK·롯데 등 다른 기업들도 공통적으로 직면한 과제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총수 1인이 주도하는 국내 대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나타났듯이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은 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는 삼성의 설명과는 달리, 총수 일가에게 필요한 대외정보를 조사하고 실행하는 과거 비서실 조직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총수가 구속돼 있다고 해서 기업 성장이 정체됐다는 것은 해당 기업 스스로가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굴러가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면서 “자신 때문에 기업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실질적인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주는 방식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서구식 가족기업 형태로의 전환을 주문하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총수 부재의 부담을 줄이면서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높이자는 게 주된 이유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유럽만 해도 제조업 분야에는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삼성도 전문경영인의 권한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차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2월16일 박영수 특검이 출근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與野 한목소리로 “재벌개혁” 공약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인해 정치권의 ‘재벌개혁’ 목소리도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앞다퉈 재벌개혁 공약을 내건 대선 주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선 주자들은 이미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를 넘어서는 재벌개혁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을 제외한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 4당은 모두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세론’을 굳히려 하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1월 재벌개혁 공약을 발표하면서 △지배구조 개혁 및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 △중대경제범죄 무관용 원칙 △‘이재용 방지법’ 제도화 등을 내세웠다. 문 전 대표는 1월10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3차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재벌개혁 없이는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고 규정한 뒤 “재벌 가운데 10대 재벌, 그중에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노동자추천이사제라는 감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는 ‘재벌개혁’의 큰 틀에서는 다른 후보들과 이견이 없다. 다만 그는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닌, 재벌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너무 단순하게 해서 누구를 삼성 편이다, 재벌 편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들의 내부거래나 독점적 지위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타도 삼성’ ‘타도 현대’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밝힌 후보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다. 이 시장은 줄곧 ‘재벌개혁’이 아닌 ‘재벌 해체’를 강조해 왔다. 그는 1월23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이 시대 최고권력 재벌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모든 후보들에게 재벌 사면복권 불허 서약을 하자고 촉구했다. 2월3일 KBS 《대선주자에게 듣는다》에 출연한 심 대표는 “정부가 재벌 총수들의 불법·탈법을 엄단하면 현행법으로도 재벌의 3대 세습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개혁 이슈는 보수정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른정당 대선후보 유승민 의원은 금산분리와 공정거래를 언급하며 대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 개혁을 공언했다. 그는 재벌에 대한 사면·복권 불가 입장을 내세우며 일정 부분 ‘좌(左)클릭’한 듯한 행보도 보였다. 같은 당의 남경필 경기지사는 재벌에 집중된 경제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공유적 시장경제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대한 가장 눈앞의 의미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을 구속시킨 박영수 특검팀의 칼날은 이제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누게 됐다. 특검에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한 최대 승부처였다. 1차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코너에 몰렸던 특검이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재청구 카드를 끄집어낸 것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뇌물 부분도 대통령 탄핵 인용 가능성 커져”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청와대는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이 곧 뇌물죄 유죄를 의미하는 게 아닌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지만, “뇌물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 측의 당초 논리가 힘을 잃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 대가로 최순실 일가에게 특혜성 지원을 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특검 수사에 앞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2월24일 마지막 변론을 앞두고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뇌물죄 혐의는 탄핵소추사유 중 ‘대통령 권한 남용’과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을 비롯한 법률 위배행위’와 관련이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그동안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탄핵심판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이동흡 변호사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사실관계 규명도 부족하거니와 법리상으로도 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고 했다”며 “따라서 뇌물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뇌물공여죄가 불분명한데 뇌물수수죄가 어떻게 성립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상황에 처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을 두고 뇌물죄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두 차례 청구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의 경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보다는 범죄의 소명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됐다. 법원이 이번에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힌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와 별개로 탄핵심판은 일반 형사재판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적으로 구속영장 발부는 유·무죄의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없지만, 탄핵심판의 경우 형사재판이 아닌 일종의 징계절차라는 점에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박 대통령이 뇌물과 관련된 사건에 연루돼 있고 국민이 신임을 거둬들일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판단하면 탄핵 인용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영장 발부로 인해 뇌물 부문과 관련해서도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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