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결핍증’ 한국문학 노벨상은 아직 멀었다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11.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번역 문학가들 “작업하고 싶은 작품이 없다” 한 목소리

노벨제단의 부회장  마이클 노벨 박사는 지난 5월 내한하여 “만일 한국에서 노벨상을 받는다면 첫 상은 문학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고무된 한국 문단은 최근 일본이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자 우리도 한번 받아볼 만하지 않느냐는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우리 문학의 성과가 이 정도면 세계 문단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자긍심이 깔려 있다. 이 경우 결론은 대개 ‘번역만 잘되면’ 또는 ‘해외 문단에 홍보만 잘하면’으로 요약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시사저널>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번역 문학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대답은 정반대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노벨상을 거론하기에는 이르다고 대답한다. 뿐만 아니라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없다’는 말로 한국 문단의 빈곤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 번역 문학가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에서 정기적으로 작품집을 내고 있는 작가 최 윤 교수(서강대 · 불문학)는 “세계 현대 문학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노벨상을 로비할 대상으로 여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못박는다.

지원금만 노리는 외국 출판사도 적지 않아
최교수는 지난 5년간 남편인 패트릭 모리스(성균관대 객원교수)씨와 함께 악트 쉬드 출판사를 통해 한국문학 작품집을 20여권 냈다. <금시조>를 필두로 최인훈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최씨 부부가 프랑스 문단에 내놓은 한국 작품집들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작은 소설붐’을 불러일으켰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르 몽드>와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은 작품집이 나올 때마다 다투어 평문을 실었고 이탈리아의 준티 출판사를 비롯하여 스페인 · 네덜란드 · 영국 등으로부터 자국어로 출판하겠다고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이 최초의 성과를 통해 한국 문학이 세계 문단에 하나의 지위를 얻었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최교수 스스로도 이제 겨우 독자층이 생긴 셈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외국 출판사가 스스로 한국 문학 작품을 기획하여 출판하겠다고 나설 때 비로소 세계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최 윤 부부의 불역 작업은 이제 2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의 하나인 갈리마르사가 처음으로 한국문학 작품집을 낸 것이다. 최근 첫 작품으로 <홍길동>을 펴낸 갈리마르사는, 곧 <신경림 시선집>을 출판할 예정이다. 최교수는 “악트 쉬드와의 번역 출판 작업이 성공하자 여러 출판사로부터 제의가 들어오고 있으나, 앞으로는 주로 갈리마르사를 통해 한국 고전과 현대 문학을 번갈아 출판하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번역 문학가에게는 작품 선택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전경자 교수(성심여대 · 영문학)가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번역 출판하기까지 거친 과정은 눈여겨 ㅂ졸 만ㅁ하다. 그가 보기에 <태평천하>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채만식의 풍자 정신이야말로 외국 독자까지 유혹할 수 있는 매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 섭외에 나섰을 때 전교수는 뜻밖의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국내에서 <태평천하>를 출판하려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던 것이다. 작고한 작가요 베스트셀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 출판사의 반응은 더욱 뜻밖이었다. ‘출판 비용을 댄다면 고려해보겠다’는 회답이 온 것이다. 한국 문학을 출판한 경험이 있는 출판사일수록 으레 번역빈자 출판비는 한국측이 내는 관행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을 전교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태평천하>는 결국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 샤프사가 출판했지만 그는 우리 문학을 외국에 알리는 일의 어려움과 현재 수준을 절감해야 했다. 지난 80년부터 한국문학 번역과 출판을 지원해온 문화예술진흥원은 지금까지 영어 번역집 30권, 불어 번역집 31권을 포함하여 번역집 86권을 모두 외국 출판사에 펴냈다. 그러나 이를 외국 출판사가 주도해 이루어진 경우는 별로 없다. 번역비는 물론 출판 비용의 절반 이상을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지원바다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토지> 출판을 맡은 프랑스의 벨퐁사는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지원금 1천8백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잇다. 문단의 한 관계자는 “외국 출판사들 사이에는 한국 작품을 번역하면 여기저기서 지원금이 들어와 인건비를 내고도 남는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말한다. 최 윤 교수는 “이런 관례 때문에 질 낮은 번역이 난무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문예진흥원 문학미술부 박상언씨에 따르면, 외국에서 책 한권을 내는 데 번역료는 4백만~6백만원, 출판 비용은 4백만원 정도를 지원한다. 그는 그것을 ‘일종의 동기 유발’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고전 널리 알리는 일이 더 중요”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출판된 이후의 상황이다. 출판된 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사장되거나 사라져버리는 책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한국 문학을 번역 출판한 오 록 교수(경희대 · 영문학)는 “내가  73년에 영역 출판한 <한국 단편문학 10선>은 아일랜드의 시학회에서도 인정한 저서이다. 이 책을 한국에서 출판했는데 아무리 애써도 구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이같은 경험은 대부분의 번역 문학가들이 겪는 일이다. 전경자 교수는 “나라 돈으로 영역 출판을 맡았던 큰 출판사조차 절판되었다는 대답을 태연히 반복한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이 이 모양인데 공돈으로 찍어낸 외국 출판사가 제대로 관리할 리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번역할 만한 책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번역 문학가들을 가장 안타깝게 한다. 최 윤 교수는 “이제 장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업을 전개해야 하라 시점인데 정작 작품이 없어 힘이 빠진다”고 털어놓는다. 전경자 교수 역시 “예술가는 별로 없고 이야기꾼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 요즘 한국 문단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오 록 교수 역시 한국 문학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아일랜드는 영어로 문학을 하기 시작한 지 1백50년 ㅁ나에 처음 노벨상을 받았다. 한국 현대 문학의 역사는 겨우 50년 정도 아니냐,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 문학의 정수는 오히려 고전에 있다. 고전에 담긴 한국 문학의 전통을 폭넓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외국 교과서에 윤선도의 시조 한 수가 실리는 일이 노벨상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 金賢淑 차장대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