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구 소멸 전국지도...100년 안 사라지는 마을 수 123곳
  • 김현지·공성윤·정윤경·강윤서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0: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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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8개월 뒤 철원군 근북면부터 사라져...'소멸 마을' 경남 31곳 최다
근북면 인구 100명 중 최저 연령은 16세…인구 191명 고흥군 시산리는 70년8개월 뒤 소멸

[편집자주]“한국의 인구 감소 속도가 유럽 흑사병 창궐 때보다 더 빠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2일 칼럼을 통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흑사병에 빗대 강조했다. 이는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실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온갖 방법으로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그사이 저출산이란 악령은 대중의 관심이 옅은 농촌부터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저출산이 심각하다 못해 ‘무(無)출산’이 팽배한 농촌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또 이는 대중의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시사저널은 저출산 여파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획 기사를 장기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지난 1월 ‘국회의원 초등학교 전수조사’, 2월 ‘곡성 1주일 살기’ 체험을 보도했다. 이번에는 ‘인구 소멸 전국지도’를 공개한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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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다음 세대가 없어졌다.”

세계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가 또다시 경고음을 울렸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023년 5월 한반도미래연구원 주최로 열린 ‘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이처럼 지적했다. 18년 전인 2006년에도 콜먼 교수는 한국의 인구 위기를 경고했다. 그는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을 ‘1호 인구 소멸 국가’로 지목했다.

 

“흑사병 때보다 더 빠른 한국의 인구 감소”

‘대한민국 인구 0명’은 다가오는 미래일까. 시사저널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전국의 소멸 시간을 측정했다. 이를 토대로 ‘인구 소멸 전국지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전국 읍·면·동 3666곳 가운데 123곳이 66년8개월 이후부터 소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과정에서 김기환 고려대 국가통계학 교수의 자문을 거쳤다. 김 교수는 한국통계학회 국가통계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인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조사 대상은 전국 읍·면·동 3666곳이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10월 인구 감소 지역으로 전국 89개 시·군·구를 지정했다. 인구 감소가 조금 덜한 18곳은 관심 지역으로 분류했다. 시사저널은 인구 소멸이 ‘더 작은’ 마을에서 ‘더 빨리’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 기준보다 더 세밀화해 읍·면·동을 조사했다. 이에 ‘1세별 읍·면·동 주민등록인구통계(2024년 1월 기준)’를 기준으로 삼았다.

조사 방법은 이렇다. ①전체 읍·면·동에서 신생아 수가 ‘0명’인 지역을 추렸다. 모두 123곳(아파트 입주 예정인 수도권 3곳 제외)이다. 이 가운데 ②해당 읍·면·동에서 ‘가장 젊은’ 최저연령 인구를 집계했다. 또한 ③시도별 0세 기준 기대수명을 집계했다. 이는 해당 시도의 신생아(0세)가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명 나이다. 마지막으로 ④시도별 기대수명에서 각 시도에 속한 읍·면·동의 최저연령 숫자를 제외했다. 기본 자료는 행정안전부의 명확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도별 기대수명(0세 기준) - 해당 시도에 속한 읍·면·동(123곳 기준)의 최저연령

단, 변수는 제외했다. 출산율 등 인구 상황이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조사했다. 특히, 인구 이동은 고려하지 않았다. 소규모 마을에선 전입보다 전출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기도 하다. 이 밖에 통계 자료와 실제 거주 현황이 배치될 가능성도 배제했다. 즉, 시사저널의 인구 소멸 전국지도는 ‘보수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소멸 시기가 더 빨라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인구 소멸 지역인 경북 영양군의 폐가가 된 한 농가 ⓒ 뉴스뱅크
인구 소멸 지역인 경북 영양군의 폐가가 된 한 농가 ⓒ 뉴스뱅크

분석 결과,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이 66년8개월로 ‘인구 소멸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철원군은 북한 접경 지역으로, 전체 인구수는 4만1319명이다. 하지만 근북면의 인구(100명)는 철원군 읍·면·동 8곳 가운데 가장 적다. 철원군 전체의 신생아 수는 209명인데, 근북면에선 신생아는커녕 16세(2명)가 가장 어리다. 근북면의 가임여성(만 15~49세)은 3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만 20~39세로 좁히면 ‘0명’이다. ‘무(無)출산’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라남도 고흥군 시산리의 시계추는 70년8개월 후 멈춘다. 이곳의 최저연령은 12세다. 그러나 단 1명에 불과하다. 또한 인구수는 191명이지만 만 15~49세 가임여성은 12명(6%)뿐이다. 이 외에 전라남도에선 21곳이 소멸 위기에 처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남권도 예외는 아니다. 경상도에서만 읍·면·동 49곳이 소멸 지도에 포함됐다. 경상남도 사천시 신수동의 소멸 시기는 74년8개월이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빠르다. 뒤를 이어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등이 76년6개월 후부터 사라질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수도권에 인접한 경기도에선 연천군 중면(77년9개월)이 상위권에 오른 점이 눈에 띈다(<인구 소멸 전국지도 D–100년> 참조).

시사저널이 조사한 123곳 가운데 인구 1000명마저 무너진 ‘초미니’ 읍·면·동은 3곳 중 1곳(33%, 41곳)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의 100명을 시작으로 경기도 연천군 중면(162명),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시산리(191명),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태도리(195명)는 200명 선마저 무너졌다.

영호남 지역의 인구 위기는 ‘빈집 현황’으로도 엿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2018~22년 전국의 빈집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라북도 2만1899호(23.42%) △경상남도 1만613호(11.35%) △경상북도 1만406호(11.13%) 등으로 집계됐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는 ‘인구 이동’ 변수를 제외했다. 그러나 수도권에 교육·교통·의료 등이 집중되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마을 소멸 속도는 더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인구 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쏠림 현상, 지역 간 교육환경 격차 심화 등으로 인구 위기가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복수의 전문가 설명을 종합한 것이다.

2023년 12월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일부 요람이 비어있다. ⓒ 연합뉴스
2023년 12월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일부 요람이 비어있다. ⓒ 연합뉴스

조사에서 제외한 ‘인구 이동’ 변수 감안하면 소멸 속도 더 빨라져

“수도권 쏠림 현상에 따라 마을 소멸이 빨라질 수 있다. 지방 출산율은 오히려 서울(0.59명)보다 높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대도시로 간다. 대도시와 작은 마을의 교육환경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부모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젊은 인구가 들어올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황명진 고려대 공공사회학 교수(한국인구학회 부회장)는 “하남·김포 등의 서울 편입,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통한 충청권 흡수 구상이 문제”라며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는 정책이나 입법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부족한 인구를 수도권으로 더 쏠리게 하겠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인구 문제는 공동체주의(개인의 삶이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공동체주의가 보편화한 일본의 ‘기혼 여성’ 출산율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마을 통합 모델도 제시됐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2021년 관광인구 등을 통해 대도시와 지역을 오가는 ‘마을 교류’를 확대하자는 취지의 자료를 발표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마을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간 교류를 확대하고 연계성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며 “아울러 인구수보다 빈곤율, 교육환경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행정기관 통합’도 거론된다. 이는 행정력 축소는 물론이고 선거구 통합에 따른 국회의원·지방의원 선출과도 관련된 문제다.

소멸 위기 마을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소멸 시기 상위권’에 오른 전라남도 고흥군은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고흥군은 대도시 등을 찾아가서 전입을 유도하는 ‘찾아가는 귀향·귀촌 운동’부터 사후관리 모니터링 사업, 단계별 정책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고흥군 관계자는 “‘대한민국 귀농귀촌 1번지 고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매년 감소세였던 전출 대비 전입 인구가 2022년부터 증가세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경상북도 상주시 관계자는 “일자리와 연계한 청년 주거플랫폼 조성사업, 공공기관과 기업 유치에 따른 3000여 개 일자리 창출, 관광객과 외국인 유치를 통한 생활인구 확대, 상주어린이정원조성, 공공산후조리원 조성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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