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의힘엔 악바리 근성이 없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4.03.29 17:00
  • 호수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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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우세 분위기를 바꾼 건 대통령 윤석열이 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호주대사에 임명한 사건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황상무의 ‘회칼 테러’ 발언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 두 사건의 발생과 논란이 된 이후의 대응에서 돋보인 건 윤석열의 둔감함과 어리석음이었다는 평가에도 별다른 이의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건 미흡하다. 사태의 전모를 이해하기 위해선 민주당의 집요한 선전·선동도 같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이 이종섭의 ‘즉각 귀국’과 황상무의 ‘스스로 거취 결정’을 요구한 건 3월17일이었다. 외교부가 호주대사 임명 건을 발표하자마자 논란이 된 게 3월4일이었는데, 13일이나 걸렸다니 너무 오래 끌었다(황상무 논란이 일어나고 알려진 건 3월14일이었다). 윤석열의 결정도 질질 끌어 3일이나 지난 3월20일에야 이종섭의 ‘곧 귀국’과 황상무의 ‘즉각 사퇴’가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민주당이 아니었다. 다음 날 민주당의 지극정성이 놀라웠다. 이종섭이 귀국길에 올랐다는 소식에 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3월21일 새벽 5시부터 공항 입국장에 모였다는 게 아닌가. 비행기는 9시에 도착한다는데 왜 새벽 5시에? 항의 시위는 4시간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피의자 이종섭 즉각해임! 즉각수사!’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해임 촉구 구호를 열심히 외쳤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그건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 모두 이 건이 선거 판세를 바꿀 결정적 사건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분위기를 더 지속시켜 조금 더 재미를 보겠다는 뜻이었을 게다. 다음 날 시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 앞에서 이어졌으며, 이후 민주당은 이 사건을 계속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건 정당한 선전·선동으로 보이지만, 이른바 ‘대파챌린지’라는 희한한 쇼는 문제가 좀 심각하다. 이는 윤석열이 3월18일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걸 악용한 사건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맹공을 퍼부었는데, 윤석열이 “여기 지금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니에요?”라고 물은 걸로 보아 그건 왜곡이었다.

한겨레 편집인 김영희는 “‘875원 대파’라는 방아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 방문에 과잉의전이나 보여주기식 홍보는 있어왔다”며 “그런데도 특별히 지지 당이 없는 사람들까지 분통을 터뜨리는 사안이 됐다”고 했다. 그간 그런 일을 잘 못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던 윤석열의 둔감을 지적하는 수준의 비판이면 족할 일이었건만, 민주당은 그런 ‘공정성’을 발휘할 뜻이 없었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3월20일 인천 유세에서 “이 정부는 국민 삶에 관심이 없다”며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후보들이 일제히 시장에서 자신의 지역구 대파 가격을 유권자들에게 묻는 인증샷을 올리는 ‘대파챌린지’ 경쟁을 해대자,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도 가세해 “윤석열 정권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특정 정치 세력 망하게 하겠다고 그렇게 악의적인 선전·선동을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망한다면, 그건 대파 때문이 아니라 야권의 이 같은 ‘악바리’ 근성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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