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몸값’ 함평 황금박쥐상…16년 만에 새집 ‘이사’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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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위상…혈세 낭비 사례에서 함평 ‘보물 1호’로 변신
금값 치솟아 몸값 5배 뛰어…유명세로 효자 관광 상품 역할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예술작품 전시·설치 전문 업체 관계자들이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을 새로운 전시 공간에 설치하고 있다. 30억 세금낭비 욕먹던 ‘함평 황금박쥐상’은 금값이 오를 때마다 황금박쥐상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예술작품 전시·설치 전문 업체 관계자들이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을 새로운 전시 공간에 설치하고 있다. 30억 세금낭비 욕먹던 ‘함평 황금박쥐상’은 금값이 오를 때마다 황금박쥐상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7일 오후 2시께,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 문화유물전시관 1층. “조심, 조심, 천천히…” 함평 황금박쥐상을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옮기는 업체 인부들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순금 162㎏을 넣어 만든 전남 함평군 ‘황금박쥐상’이 16년 만에 새 전시관으로 이사했다. 새 보금자리는 기존 어두컴컴한 동굴 전시장보다는 공간이 좁지만 보안이 강화되고 관람도 더 편리한 곳이다. 

함평 황금박쥐상은 제작 당시 순금 매입 비용만 27억원에 달해 ‘세금 낭비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금값이 치솟으면서 지금 시세로는 몸값이 150억원에 달한다. 몸값이 커진 황금박쥐상의 위상을 보여주듯 이날 이전 작업은 말 그대로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이뤄졌다.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황금박쥐상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황금박쥐상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조심, 조심, 천천히”…‘신줏단지 모시듯’ 새 보금자리로 

이날 본체 무게만 640㎏이 넘는 탓에 작품을 옮기고 설치하기 위해 기중기와 지게차를 불러와야 했다. 혹시 모를 도난 사고에 대비하려는 듯 엑스포공원사업소 소속 청원 경찰과 사설 경비업체 직원이 동시에 현장에 나와 주변을 경계했다. 

예술작품 전시·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 관계자들이 세심한 손길로 작품을 분해·포장해 소요 시간만 2시간 넘게 걸렸다. 기존 전시장과 불과 500m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지만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해 무진동 특수 차량까지 동원됐다. 

전시장 밖으로 나온 황금박쥐상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전 작업을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잠시 작업이 멈춘 사이 황금박쥐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 보금자리를 기념하듯 조그마한 어린 박쥐 한 마리가 전시장 안으로 날아들어 바위 모양으로 된 벽면 틈새에서 휴식을 취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업체 관계자는 “이틀 전부터 마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황금박쥐상을 따라 온 듯이 새 전시공간 입구 왼쪽 벽에 박쥐 한 마리가 날아와 꿈쩍도 않고 있다”며 “행여 방해가 될까봐 박쥐가 붙어있는 벽체 쪽 입주 청소도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순금 162㎏을 넣어 만든 전남 함평군 ‘황금박쥐상’이 27일 오후 16년 만에 새 전시관으로 이사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순금 162㎏을 넣어 만든 전남 함평군 ‘황금박쥐상’이 27일 오후 16년 만에 새 전시관으로 이사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새 둥지는 ‘5억 철옹성’…방탄유리·2인 1조 당직 근무 

군은 황금박쥐상 이전 사업에만 5억원을 투입한다. 이 중 상당액이 보안 시스템 관련 비용이라고 한다. 보안 셔터와 방탄유리 등 4중 도난 방지 장치를 설치하고, 연간 2200만원짜리 도난 보험에 가입할 계획이다. 24시간 보안 업체 감시 속에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2인 1조로 당직 근무도 선다. 

전시관 내부에 동작 감지 센서를 달고, 전시관 내·외부에 여러 대의 CCTV도 설치할 계획이다. 김광덕 함평군 시설관리팀장은 “많은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전 사업을 추진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귀한 작품이다 보니 보안 등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함평군은 지난해 12월부터 함평엑스포공원 내 나비곤충생태관 옆에 2층 규모의 문화유물 전시관을 만들고, 1층 입구 쪽에 87㎡(26평) 규모의 ‘황금박쥐전시관’을 따로 만들고, 이날 황금박쥐상 이전을 완료했다. 황금박쥐상은 2008년 순금 162kg을 넣어 폭 1.5m, 높이 2.18 크기로 만들어져 엑스포공원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함평읍 화양근린공원 내 황금박쥐생태전시관에 보관돼 있었다. 

황금박쥐상을 이사하기 이틀 전에 새 보금자리를 기념하듯 조그마한 어린 박쥐 한 마리가 전시장 안으로 날아들어 바위 모양으로 된 벽면 틈새에서 휴식을 취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황금박쥐상을 이사하기 이틀 전에 새 보금자리를 기념하듯 조그마한 어린 박쥐 한 마리가 전시장 안으로 날아들어 바위 모양으로 된 벽면 틈새에서 휴식을 취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귀한 몸값에 절도범들의 표적되기도  

황금박쥐상은 지난 2008년 이석형 군수 재임 당시 30억원을 들여 제작됐는데 금값 상승으로 지금은 154억원(28일 기준 시세)에 이른다. 15년 만에 5배가 된 것이다. 이처럼 금값이 오를 때마다 황금박쥐상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럴 때마다 관광객들의 관심도 높아져 효자 관광 상품으로도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귀한 몸값만큼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2019년 3월15일 새벽 3인조 절도범들이 황금박쥐상 전시관에 몰래 진입해 조형물을 훔치려다 붙잡힌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황금박쥐상을 훔치려 시도했으나 입구 철제 셔터가 3분의 1쯤 올라갔을 즈음 사설 경비업체 경보장치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달아나 미수에 그쳤다. 당시 황금박쥐상의 가치는 85억원에 달했다.

함평군은 새 전시관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언제든 관람객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상설 전시하기로 했다. 기존 전시관은 방문객이 적다는 이유로 평소엔 4중 철통 보안 속에 비공개하고, 매년 봄 ‘함평나비대축제’, 가을 ‘대한민국 국향대전’ 때 보름 정도씩 일반에게 공개해 왔다. 함평군 관계자는 “새 전시관이 마련된 만큼 보다 많은 방문객이 언제나 황금박쥐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옮겨졌다. 보안업체와 함평군 관계자들이 보안 셔터를 작동해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월 27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순금 162㎏을 넣어 만든 ‘황금박쥐상’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옮겨졌다. 보안업체와 함평군 관계자들이 보안 셔터를 작동해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0억 세금낭비 욕먹던 ‘162kg 함평 황금박쥐’

황금박쥐상은 한반도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황금박쥐(붉은 박쥐)가 관내에 집단 서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함평군이 관광 상품화를 위해 제작했다. 황금박쥐는 1999년 2월 함평군 대동면 고산봉 지역 일대 동굴에서 집단 서식지가 발견됐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포유동물 1호, 천연기념물(제452호)로 지정돼 있다. 

함평군은 발견된 황금박쥐가 모두 162마리여서 순금 162㎏을 넣어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순금으로만 제작하면 조형물이 뒤틀어지기 때문에 내구성을 고려해 순금 162㎏에 은(9.25㎏)과 동(13.88㎏)을 섞었다. 홍익대 디자인공학연구소가 제작한 이 조형물은 가로 1.5m, 높이 2.1m 크기에 황금박쥐 다섯 마리가 날갯짓하는 모습이다.

황금박쥐 조형물 제작 당시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황금박쥐상에 관광객 유입 효과가 있을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순금 매입 비용만 27억원에 달해 세금 낭비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순금을 이용한 조형물을 만들려다 예산낭비 지적에 휘말린 지자체는 함평군만 아니다. 전남 신안군은 2019년 순금 189kg을 매입해 황금 바둑판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당시 시세로 110억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했다. 신안군은 조례를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나섰지만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금값이 오르자 신안군청은 이듬해 6월 “1년이 지난 지금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40억원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함평 ‘황금박쥐상’은 지난 2008년 제작돼 함평 엑스포공원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함평읍 화양근린공원 내 황금박쥐생태전시관에 16년 동안 보관돼 있었다. 27일 오후 출입문이 굳게 닫힌 황금박쥐생태전시관 ⓒ시사저널 정성환
함평 ‘황금박쥐상’은 지난 2008년 제작돼 함평 엑스포공원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함평읍 화양근린공원 내 황금박쥐생태전시관에 16년 동안 보관돼 있었다. 27일 오후 출입문이 굳게 닫힌 황금박쥐생태전시관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시간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평군의 재정자립도는 바닥 수준이었다. 이석형 전 군수는 고민 끝에 들판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소재로 관광 상품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관광의 ‘관’자도 모르던 시골에서 당연히 먹힐 리 만무했다. 첫해는 겨우 인식만 시켰고 이듬해 공항에서 밀수품으로 압수된 파충류들을 임시로 임대해 뱀 전시장을 따로 만들어 콘텐츠를 추가했다.

함평군은 한때 붐을 일으켰던 나비에 대해 점차 관광객들이 식상해하자 이번에는 황금박쥐가 있다는 동굴을 찾아다녔다. 실제로 황금 박쥐 대신 누런색의 박쥐가 있기는 했는데, 관광객들이 드나들면 분명히 생태계 파괴가 될 것이고 그래서 동굴 입구에 2008년 30억원을 들여 황금박쥐를 제작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군수가 미쳐서 형편도 어려운데 금으로 저런 짓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2008년 4월 전시를 시작했고, 금값이 올라 유명세를 치르면서 혈세 낭비 사례였던 황금박쥐상은 함평 ‘보물 1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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