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번역 망치는 노벨상 콤플렉스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6.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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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譯者들 “장기적·체계적 작업에 암초로 작용”…해외 출간된 작품 겨우 6백여 권
‘노벨 문학상 콤플렉스.’ 노벨 문학상은 해마다 11월 초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하지만, 노벨 문학상 열병은 스톡홀름에서 한참 떨어진 한국에서 도진다. 매스컴은 그 해의 수상 작가 못지 않게 한국의 누가 노벨 문학상감인지 초점을 맞춘다. 특히 올해는 문학의 해여서 노벨 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넘쳐났다. 그리고 ‘우리 문학도 번역만 잘 할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뒤따랐다. 문학성은 뒤떨어지지 않지만, 번역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수상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문학계에 좋은 번역, 훌륭한 외국인 번역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번역 활동은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어 왔다.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하나로 올려 놓는 일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면, 그들은 그 과제를 스스로 떠맡은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외국인 번역가들은 한국 문학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거의 천직으로 삼고 있다.

브루스 풀턴씨는, 다른 번역가들이 대부분 대학 교수인 반면 전문 번역가이다. 지난 8월 그는 16년 만에 한국에 다시 와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한 학기를 공부했다. 78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80년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한국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줄곧 번역에만 전념해 왔다. 그가 마흔여덟이라는 나이에, 미국에서 인정해 주지도 않는 한국의 박사 학위를 얻으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번역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황순원씨의 소설을 만난 다음 평생의 업으로 삼은 한국 문학 번역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새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풀턴씨를 포함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빼어난 번역가는 모두 5~6명에 이른다. 이들이 번역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단지 ‘한국 문학이 좋아서’이다. 우연히 빠져들게 된 한국 문학을 자국 독자들에게 전하자는 소박한 뜻에서 출발했으나, 번역을 하면서 이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충분하지 못한 번역 지원 정책, 서양 독자들이 즐겨 보는 2백50쪽 안팎의 장편이 별로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먼저 꼽는 번역의 어려움은 뜻밖에도 한국의‘노벨상 콤플렉스’이다.“노벨 문학상 위해 일하는 번역가는 없다”

아일랜드 출신인 케빈 오룩 교수(경희대·영문학)는 “노벨 문학상을 위해 일하는 번역가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 또 80년대 말부터 부인 최 윤교수(서강대·소설가)와 짝을 이루어 한국 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데 기여해온 파트릭 모리스 교수(파리 INALCO 대학·비교문학)도 노벨 문학상을 향한 꿈을 ‘프랑스에서라면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영국 출신인 안선재 교수(서강대·영문학, 영국명 앤터니 테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노벨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올림픽 금메달쯤으로 여긴다”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노벨 문학상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번역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데 심각한 방해를 받는다. 노벨상 콤플렉스는 성급한 번역과 생존 작가 작품에만 집착하는 결과를 낳는다. 프랑스 벨퐁 출판사가 94년에 펴낸 박경리씨의 대하 소설 <토지>는 성급함이 낳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지적된다. 한국에서는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 손꼽히지만, 프랑스판은 성급한 번역으로 인해 작품이 갖는 뛰어난 문학성을 오히려 훼손하고 만 것이다. 파트릭 모리스 교수는 “사과 상자 속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사람들은 상자 전체가 썩었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성급하게 이뤄지고 오역이 생기면, 그것은 한국 문학을 죽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노벨상 콤플렉스는 번역 대상작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는 결과도 가져온다. 전통 문학을 포함한 한국 문학 전반을 소개하는 데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의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만큼 지원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

영어권 독자가 볼 만한 작품 드문 것도 문제

64년 가톨릭 신부로 한국에 들어와 70년대 초부터 번역가로 활동해 온 케빈 오룩 교수는 이규보의 한시와 조선시대 시조를 번역·출판해 왔다. 그는 20년을 갈고 닦아 지난해 미국에서 출판한 <이규보 시선>을 가장 값진 번역물로 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규보는, 중국의 소동파·이태백·두보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있는 시인이다.

88년부터 시인 구 상·김광규·고 은·서정주 씨 등의 시집과 이문열씨의 장편 <시인>을 영국과 미국에서 번역·출판한 안선재 교수는, 영어권 독자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한국 문학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외국 젊은 작가들이 무엇을, 왜 쓰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한국 문학을 쇄신하는 일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악트쉬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89년부터 이문열 이청준 조세희 씨 등의 소설 20여 편을 프랑스에 소개한 파트릭 모리스 교수는 한국 문학을 파노라마 식으로 번역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의 문학 전문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 <홍길동전> <신경림 시선집>을 출간한 것은, 한국 문학을 전반적으로 소개한다는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다. 그가 보기에 불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은 한국에서 온 ‘프랑스 문학’이다. 그는 번역을 프랑스 문학과 한국 문학의 결혼이라고 표현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박상언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해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집은 1889년 미국에서 나온 구비문학 선집 이후 모두 6백여 권에 이른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일본은 45년 이후 2만여 편의 작품을 여러 나라 말로 번역·출판했다. 번역의 양만으로도 일본과 비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지원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 정부는 케빈 오룩 교수의 다음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번역 프로그램을 수출이나 투자로 여기지 말고,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에 기증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귀중한 문학적 성과를 세계 사람들이 모르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리고 난 다음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뜻밖에 받는 보너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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